오피니언 문창극칼럼

"문제는 정권교체다, 이 바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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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금 이 나라에는 민주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조차를 거부하는 움직임들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관위의 결정을 무시하고 선거에 계속 개입하겠다고 나섰다. 정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고의적으로 민주제도를 파괴하고 있다.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든 것이나, 재집권을 위해 민주적 제도를 무시하면서 선거에 관여하겠다는 것이나 똑같이 반민주적 행위다. 당연히 탄핵의 대상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탄핵사태의 악몽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불법 선거개입을 막지 못한다면 앞으로 정권교체라는 말은 우리 정치사에서 없어질지도 모른다. 현직 대통령이 가지는 힘 때문이다. 공무원들에게 선거공약을 점검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졌고, 선거공약을 빌미로 경찰이 압수수색을 벌이는 지경이 됐다. 박정희 시대나 군부독재 때나 있었던 일들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사생결단을 해서라도 정권교체를 막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민주투사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잡았던 사람의 말이다. 5년 전에 권력을 놓은 전직 대통령이 왜 정권교체를 두려워하는가? 지난 5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무슨 큰 잘못이 드러날까 조바심하는가?

  한나라당을 보면 답답하다. 아니 그 어리석음이 불쌍하다. 지금 누가 몇% 지지이고 두 후보 사이에 거리가 얼마나 좁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저쪽은 후보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데 자기들끼리만 검증이다, 경선이다 하며 서로 물고 뜯고 있다. 이 싸움에 노 대통령과 DJ가 가세하고 있다. 그들은 캥거루처럼 자기 새끼들은 주머니 속에 넣고 새끼를 위해 지금 대리전을 벌여 주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둘이 기진맥진 상처뿐인 경선을 끝내면 그때 어미 캥거루는 주머니에서 새끼 후보를 꺼낼 것이다. 이미 두 사람 싸움에 신물을 내던 백성과 언론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물을 향해 눈길을 돌릴 것이다. 한나라당은 왜 이것을 보지 못할까.

 한나라당 두 후보는 둘 중 하나만 없어지면 당선은 거저먹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니 상대 당보다 같은 당의 상대 후보를 더 미워한다. 경선이라는 것은 본선에 나가 싸울 장수를 뽑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수가 누구든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 경선이란 죽기살기 대결이 아니라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지 예비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목검을 갖고 솜씨를 겨뤄야지 시퍼런 칼을 들고 설쳐서는 치명상을 입는다.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울수록 상대는 웃는다. 지금 한나라당은 자기들의 지지가 여당의 몇 배가 된다고 거만해 하고 있다. 벌써 대통령이 다 돼 있다. 권력은 잡아보지도 못하고 권력에 이미 눈이 멀었다. 5년 전과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시커먼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는데 한나라당 두 후보는 꽃놀이할 자리싸움만 벌이고 있다. 권력을 쥔 쪽에서는 사생결단으로 정권교체를 막으려 하는데 두 사람은 당내 경선에만 혈안이 돼 있다. 야당의 존재이유는 정권교체다. 지금 식의 당내 경선을 치르고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가. 경선 후유증으로 정권교체를 못한다면 그런 야당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지금 두 사람은 당내 경선을 위해 때묻은 과거 인사들을 모으기에 경쟁이 붙었다. 그런 사람들이 국민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라도 있는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뜻인가. 경선은 이기고 집권을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클린턴이 아버지 부시와 대결할 때 “문제는 경제다, 이 바보야”라고 말했듯이 지금 한나라당에는 “문제는 정권교체다, 이 바보야 ”라고 말해주고 싶다.싶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