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인민군 아내의 편지… 마무리는 '선전 선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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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흘러가는 세월은 어느듯 흘러서 당신이 떠나간지도 벌써 8개월 경과하였습니다. 아지까지 소식 모르는 저는 담담하기가 짜기없는 저는 1월22일 일은 저녁에 편지를 받아본 저의 마음은 매우 만족하였습니다.......나는 11월 15일 몸을 푸렀습니다. 그리하여 기섭이 누이 동생을 탄생하였으며 장난구러기 기섭이도 잘 놀고 있습니다"

소설가 박도 씨가 엮은 '지울 수 없는 이미지3(눈빛출판사)'에 실린 인민군 아내가 전선에 있는 남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사진1). 대필로 작성된 것이지만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남편을 그리는 아내의 마음이 절절이 배어 있다. 그러나 편지 말미에 나오는 내용은 편지가 쓰여진 진의를 의심케 한다.

"당신의 몸건강하여 미 제국주의 자들과 힘것 싸워 달라는 것을 부탁하면서 저는 후방에서 승리의 그날까지 국가사업에 로력하면서 당신이 도라올 날을 기다라며 당신은 집에 아무 걱정마시고 본신 사업에 열중하시오. 원수들과 싸울 것을 기리 기리 빌면서 이상 순소없는 말로..... 금강1리 김두칠 기록함 1952년 1월 23일 "

인민군의 선전선동에 이용된 편지는 또 있다. '전 국방군 6사 2연대 3대대 9중대 일등병 양성복'으로 돼 있는 이 편지는 인민군에 투항한 것으로 보이는 양씨가 옛 전우였던 국군 전병두 씨에게 보낸 것이다.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고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귀순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나는 이곳에 와서 귀형이 보지 못한 여러 가지 새 진리를 허다이 보았으며 즐거운 우리 생활의 한장면을 전하려 합니다.....중국 지원군을 만났을 때는 뜻박에도 친절하게 뜨거운 우정으로 나를 마지하여 주었으며 지금은 후방에서 매일 쌀밥과 따뜻하고 마음에 드는 침실에서 뜸뿍한 침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양씨는 인민군은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자기 피와 살과 같이 여기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뒤 다음과 같이 편지를 맺는다.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펼쳤던 교묘한 선전 선동술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리승만 괴뢰군은 국방군인 커녕 국매군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도 과거 그랬든 것과 같이 귀형은 지금까지도 그러한 매국집단에서 조국을 반대하는 총을 메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하루속히 그 죄악의 소굴에서 벗어나기를 권유합니다"

이 책에는 인민군 아내의 편지를 비롯해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선전 선동의 심리전을 펼쳤던 전단(삐라)ㆍ포스트ㆍ편지 등 희귀자료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국군의 투항을 선동하는 인민군의 '삐라'다(사진2).

'신변안전보증서'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돼 있는 삐라에는 "리승만괴뢰군 장병들이여 미군놈들과 리승만도당들에게 기만되여 악가운 목숨을 버리지 말라!"고 씌어 있다. 증명서 아래에는 '이 증명서는 한장으로 몇명이든지 사용할 수 있다'며 이 보증서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는 신변을 보호하고 우대할 것이다'고 돼 있다. 지금 보면 실소를 머금게 하는 이 삐라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했을지 의문이 든다. 삐라는 또 'SAFE CONDUCT PASS' 라는 영문으로도 뿌려졌다(사진3). UN 연합군을 향해 뿌려진 것으로 보인다.

삐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쌀밥' 등 먹는 것과 관련된 표현이 자주 나온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전쟁통에 배고픔은 총칼보다 무서운 적이었을 것이다. 이 삐라에도 '충분한 식사와 주택을 보장해 준다'는 내용이 있다. 또 다른 삐라에는 노골적으로 "당신들이 배부루게 먹지 못하니 넘어와서 입쌀과 빵을 먹으라"며 투항을 권유하고 있다.

점잖게 연하장 형식으로 된 삐라도 눈길을 끈다(사진4). 중국 인민 지원군이 살포한 삐라에는 "리승만군대 제3사 사병들 새해을 축하함'이라는 새해 인사와 함께 김일성 초상화 아래에서 배불리 먹고 춤을 추는 그림을 붙인 뒤 "보라! 조선인민공화국의 인민은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과의 정당화기로서 신년을 유쾌히 마지한다"고 쓰여 있다.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3'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있는 한국전쟁 사진 250여 점이 실려 있다. 한국전쟁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사진들이다. 특히 이번에 나온 제 3집에는 사진뿐 아니라 재미사학자 방선주 박사의 도움으로 어렵게 구한 인민군 '삐라', 조선노동당 관련 서류, 유품으로 나온 편지, 선동 포스트 등이 실려 있어 한국전쟁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으로 평가된다.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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