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대선 「지역몰표」가장 극심/역대 대통령선거로 본 표향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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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촌야도」현상으로 15만표차 접전 5대/박정희­김대중 대결 지역감정 싹터 7대/네 후보 출신지 1위… 전국이 4분 13대
이번으로 14회를 맞은 대통령선거는 그때마다 우리나라 정치사의 굴곡을 반영하는 축도였다.
13대 선거까지 여야는 「민주­반민주」,「독재­반독재」를 기본대결축으로 각각 안정과 개혁을 내세우며 유권자를 양분해왔다.
지역간 표의 흐름도 도농간·동서간으로 뚜렷이 구분,이른바 「여촌야도」니,「지역주의」니 하는 말이 생겨났다.
이번 14대는 이같은 대결구도가 상당히 깨지고 대재벌의 가담으로 판세가 매우 복잡하고 특징을 꼬집기 어려워졌다. 이런 가운데 젊은층의 투표율·날씨 등 부차적 변수에도 각 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직선으로 치러진 대통령선거는 2∼7대와 지난 13대까지 모두 7회.
그중 표의 지역별 분화가 가장 극심했던 것은 지난 87년 13대선거때다.
후보로 나선 1노3김의 득표율을 보면 노태우후보가 대구·경북(70.7%,66.4%),김영삼후보는 부산·경남(56%,51.3%),김대중후보는 전남·전북(90.3%,83.5%),김종필후보는 충남(49.1%)에서 압도적인 표를 모았다.
네후보 모두 출신지에서 몰표로 1위를 차지,표분포상 전국이 「4분」됐던 것이다.
특히 이 선거는 지난 71년이래 16년만의 첫 직선인데다 「군정종식」「문민정부」에 대한 열망으로 89.2%라는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그러나 야권후보 단일화실패와 극도에 달한 지역주의 때문에 노 후보가 36.6%라는 사상최저의 지지율로 2백만표 차이로 당선되는 결과를 빚었다.
서울지역에서는 김대중(32.6%),노태우(30%),김영삼(29.1%) 순으로 불과 1∼2%차를 보였다.
노 후보의 집권은 결국 유권자의 견제심리를 자극,뒤이은 13대총선에서 「여소야대」현상을 낳고 있는 3당 합당으로 귀결됐다.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대통령은 5,6,7대 선거에서 윤보선·김대중후보와 세차례 접전을 치렀다.
63년의 5대선거에서 박 후보는 군복을 벗고 공화당으로 출마,민정당의 윤 후보를 불과 15만여표차(득표율은 1.5%차)로 눌렀다.
「여촌야도」라는 말이 나온게 이때다.
윤 후보는 서울(80만명)·경기(66만명)에서 박 후보(37만명,38만명)를 거의 더블스코어로 누르고 인천·광주·대전에서도 압승했으나 경남·북,전남·북 등 농촌에서 박 후보에게 몰표가 가는 바람에 패배했다.
이때만해도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없었으나 71년 7대선거에서 박정희·김대중후보 대결로 격화되기 시작했다.
박 후보는 경북(1백33만대 41만)과 경남(89만대 31만)에서,그리고 김 후보는 전남(87만대 48만),전북(53만대 31만)에서 압승을 거둬 「경상」대 「전라」라는 고질병이 나타났다.
이는 박 후보가 3선개헌의 정치적 부담을 지역주의 촉발로 넘으려는데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14대에서도 선거운동기간중 잠복했던 「지역주의」가 표로 표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가 깨져 특별한 쟁점이 없다는 점을 감안,각 당은 우세예상지역·지지층의 투표율을 높이는 노력을 다각도로 전개했다.
특히 전 유권자의 57%에 달하는 20∼30대의 젊은층과 57%를 차지한 여성층의 투표율 고저에 따른 영향에 신경을 쏟고 있다. 날씨와 투표일이 금요일이라는 조건이 이들의 투표율에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올지도 관심사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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