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북한 뭐가 달라졌나] 北 경제개혁…386세대 전면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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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북한에 2003년은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선거를 통한 세대교체 바람이 거셌고, '시장 사회주의'로 가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난 해였다. 특히 1980년대에 대학교육을 받은 북한판 '386세대'가 경제개혁 주체로 급부상했다.

◇김정일 2기체제 출범과 세대교체=북한은 지난 8월 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권 2기를 이끌어갈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선거를 5년 만에 치러 金위원장을 포함해 총 6백87명을 새로 선출했다. 이를 통해 대의원의 반수 정도가 교체됐다.

연령 분포도 35세 이하의 경우 1.9%에서 2.2%로 0.3%포인트, 36~55세는 48.5%에서 50.1%로 1.6%포인트가 각각 늘어난 반면, 56세 이상은 49.6%에서 47.7%로 1.9%포인트 감소했다. 주목되는 현상은 북한의 간판격인 주요 기업과 공장의 신임 30~40대 지배인들이 이번 대의원 선거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기사장으로 있다가 지난 5월 지배인으로 발탁된 김형남(40),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의 산하인 대안전기공장 지배인으로 있다가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승진한 김덕훈(42)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김형남 지배인은 청진광산금속대학을 나와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말단 용해공으로 취직한 후 현장기사.기사장을 거쳐 1만4천여명의 근로자를 거느리는 대기업의 지배인이 된 입지전적 인물. 전임 지배인이 70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30년이나 젊어진 셈이다. 북한 공장.기업소 지배인들의 세대교체는 과거의 '관습과 타성'에서 벗어나자는 기업 경영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난 15~17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남북 '농업과학심포지엄'에 참가한 북한의 한 농업학자는 "젊은 세대의 등장은 새로운 사고와 경제 혁신을 위한 현 시대의 요청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일본의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당국은 앞으로 주요 공장, 기업소의 지배인을 30~40대로 전면 교체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이는 실리를 중시하는 경제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추진력을 갖춘 젊은 세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 사회주의'모색=지난해 11월 6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최영건 북측 위원장(내각 건설건재공업성 부상)은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장마당(농민시장)을 시장으로 고쳤다"며 "국가가 투자하는 시장을 평양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북한의 고위관료로는 처음으로 '시장'과 '사회주의'의 결합을 의미하는 '시장 사회주의'란 용어를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중앙의 '계획명령'이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의 '시장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북한이 '시장'을 중시하는 정책은 계속 취해왔다.

우선 개인의 시장 판매를 허용한 것을 비롯해 상점.음식점 등의 개인임대, 백화점.공장 등의 외국인 위탁경영이 허용됐다.

시장관리위원회는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입주자들로부터 시장 사용료를 받고, 입주자들은 시장 사용료와 별도로 소득에 따른 '국가납부금'(일종의 소득세)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는 농민이나 일반 주민들 뿐만 아니라 기업소나 협동농장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평양 시내 통일거리에 새로 만들어진 '통일시장'에 다녀온 인사들에 따르면, 북녘의 시장에서도 남쪽의 재래식 시장처럼 물건값을 놓고 흥정이 이뤄지고, 품질과 수요 공급에 따라 변동가격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인터넷 조선신보는 지난 22일 "(시장은) 쌀.기름을 비롯한 중요 지표상품의 상한가격을 설정해 수요와 공급에 따라 10일에 한번씩 검토, 적절한 가격을 산출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는 "아직까지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공급자가 주체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를 따르지 않고 가격의 결정방법과 절차 등을 국가가 계속 통제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특히 시장의 활성화로 '돈을 버는 개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베이징의 한 기업가는 "북한에서 시장을 통해 합법적으로 돈을 버는 개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들의 행보가 앞으로 북한의 경제개혁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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