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기자의영화?영화!] '괴물' vs '대일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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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달 초 일본에서 '대일본인'(大日本人)이라는 일본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제목은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킬 법한데, 내용은 전혀 아니랍니다. 주인공은 각종 괴수와 싸워온 영웅의 후손으로, 그 역시 지금도 일본 곳곳에 괴수가 나타나면 거대한 몸집으로 변신해 맞서 싸웁니다. 그런데 실상은 영웅의 통념과 딴판입니다. 무능력한 백수건달에 가깝지요. 사회에서도 존경을 받기는커녕 인기가 바닥입니다. TV에서 방송하는 대결장면의 시청률은 일기예보에도 못 미친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니저(!)가 있습니다. 스폰서를 끌어다가 광고를 붙여주는 역할이지요. 어쩌다 괴수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는 일이 벌어지는데, 매니저는 이를 반깁니다. 등 뒤에 붙은 광고가 훨씬 잘 노출된다나요.

'대일본인'은 일본 괴수 영화의 전통을 비틀고 뒤집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괴수들의 형태 역시 재미있습니다. 실사처럼 보이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한마디로 '나 컴퓨터그래픽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만화적 캐릭터들이지요. 막판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일본 특유의 '특촬물' 흉내를 냅니다. 가짜임이 빤히 보이는 미니어처 세트에서 유치찬란한 유니폼을 입은 새로운 영웅들을 등장시킵니다.

'대일본인'을 본 것은 5월 칸 영화제에서였습니다. 감독주간에 출품됐지요. 한 해 앞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사진)이 초청됐던 바로 그 섹션입니다. 그 때문이 아니라도 자연스레 '괴물'이 떠오르더군요. 괴물 영화의 통념과 달리 초반부에 괴물의 실체를 드러내고, 괴물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결코 영웅대접을 받지 않는 변종 괴수 영화라는 점에서요. 혹 '괴물'이 '대일본인'의 탄생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의적인 추측도 해봤습니다. 할리우드 '고질라'의 원조 격인 '가메라'의 나라이자, 괴수 영화의 본산을 자처하는 곳이 일본이니까요.

'대일본인'은 해적과 거미인간 사이에서 개봉 첫주 일본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더군요. 지난해 우리네 '괴물'만은 못해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경쟁하는 자국 영화의 흥행성적으로는 괜찮지요. 특히 지금 충무로의 처참한 형편에 비한다면 말입니다. '괴물'이 괴력을 발휘한 지 꼭 1년 만에, 충무로는 한국 영화 대항마의 등장을 목 빼고 기다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되짚자면 '괴물'은 변종이라서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할리우드 같은 디지털 표현력을 '우리도 할 수 있다'를 넘어, 할리우드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와 전개로 한국적인 맛을 제대로 냈지요. 할리우드 밖의 관객들이 자국 영화에 기대하는 것이 '또 하나의 할리우드'는 아니라는, 단순한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할리우드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충무로 변종의 힘을 기다립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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