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잠정 타협’ 내신 파동, 7개大 입학처장에 물어보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호 03면

서울ㆍ경인지역 대학 입학처장들이 22일 밤 서울 모처에서 모였다. 이들은 회의를 마치고 ‘회장단 의견’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언론사에 보냈다.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이 최대한 존중되기를 바란다”고 전제하면서도 ‘내신 실질반영률 확대’라는 교육부의 요구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 10여 일 동안 정부와 대학이 대립하면서 고교 교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내신 반영 파동’이 표면적으로는 잠복하는 순간이었다.

“교육부 요구대로 해도 달라질 건 없어”

이화여대와 연세대가 12일 “정시모집 때 내신 1~4등급 모두 만점을 주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자 정부의 제재방침이 나온 게 발단이 됐다. 교육부는 내신 반영비율이 50%가 되어야 한다고 대학을 압박했다. 급기야 정부는 “지원 예산을 깎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모든 압박의 중심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다. 청와대는 대학이 내신을 무력화하려 한다고 거칠게 공격했다.

논란의 핵심은 고교 간 학력차가 존재하느냐였다. 정부의 압박이 성공했다면 대학이 고교 간 학력차가 없다고 인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고려대ㆍ연세대ㆍ이화여대ㆍ서강대ㆍ성균관대ㆍ한양대ㆍ숙명여대 등 7개 대학 입학처장에게 내신 파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었다. “내신 파동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학을 압박한 것”이란 답변이 나왔다. 입시 안의 내용이 특별히 바뀐 건 없이 소모전만 벌였다는 것이다.
 
Q1: 내신 실질반영률 정말 50% 되나.

A: 먼저 교육부가 내신 반영률을 높이기 위해 제시한 계산법에 대해 각 대학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대학은 500점 만점의 내신 변별력을 낮추기 위해 기본점수를 400점 이상 줬다. 교육부는 각 대학이 내신 기본점수를 없앨 수 없다면, 내신에 기본점수를 주는 것처럼 수능과 논술에도 기본점수를 주라고 한다. 대부분의 대학은 수능과 논술을 통해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해 여기에는 기본점수를 주고 있지 않다. 그러나 처장들은 교육부의 요구대로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내신 500점, 수능 400점, 대학별 고사 100점 만점 중 기본점수를 내신 250점,
수능 200점, 논술 50점으로 하기로 하자. 이 경우 내신 반영률 50%는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고려대 박유성 처장은 “내신 상위(1~4) 등급 간 격차를 0.01~0.04점으로 촘촘하게 줄이고 하위(5~9) 등급 간 격차를 벌리면 상황은 ‘도루묵’이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이를 알면서도 내신 강화안의 무력화를 막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대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숙명여대는 내신 1~4등급까지는 1.5~3점 차, 4~9등급은 4~5점 차를 두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학교 박천일 처장은 “이화여대가 전략을 너무 일찍 노출한 게 문제”라며 “‘내신 무력화’란 표현이 정부를 자극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수능에 기본점수를 주라는 주문에는 냉소적이었다. 박유성 처장은 “한마디로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수능 기본점수로 300점을 준다고 할 때 5등급과 9등급의 점수가 동점 처리될 수 있다. “애써 9등급까지 만들어놓고 5등급과 9등급을 같게 점수를 줘도 되느냐”는 게 박 처장의 지적이다. 성균관대 성재호 처장은 “수능은 모집단이 60만 명이고, 내신은 기껏해야 500명인데 시험의 신뢰도가 같을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한양대 차경준 처장도 “내신이나 논술 같은 주관적 시험에 주는 기본점수를 수능에도 주라는 것은 수능을 무력화하는 의도”라고 말했다.
 
Q2: 내신 우수자가 수능 우수자인가.

A: 이번 사태로 내신과 수능의 상관관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모든 대학은 최소 3년치 신입생의 내신-수능 상관관계 분석 시뮬레이션 결과를 갖고 있다. 이를 토대로 수시모집 때 내신 위주로 50%, 정시모집 땐 수능을 중시해 50%를 뽑아왔다. 그런데 교육부는 고교 간 학력차가 없으니, 내신 성적이 좋으면 수능 성적도 좋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시모집 때도 내신 반영비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천일 처장은 “수능 1등급 중 내신 5등급도 있더라”며 “내신과 수능을 잘하는 아이들이 다르다”고 말했다. 박 처장에 따르면 숙명여대의 경우 지난해 수시 때는 지방학생들이 많이 들어왔고, 정시 때는 서울 강남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연세대 이재용 처장은 “지난 3~5년 시뮬레이션 결과는 교육부 주장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서강대 김영수 처장은 “최근 일반계 고교생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내신과 수능의 등급이 일치하지 않는 학생이 75%였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우리 학교 학생 분석결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성재호 처장은 “개인의 실력차가 있다면 그걸 보완해주는 형평한 기회를 주는 게 오히려 대학의 사회적 책무”라고 했다.
 
Q3: 좋은 학생 뽑으려는 사립대가 이기적?

A: 정부는 “대학이 학생들을 뽑아서 잘 키우려 하지 않고 좋은 학생만 뽑으려 한다”고 비난한다. 김신일 부총리는 직접 “사립대가 이기적”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박유성 처장은 “서울대는 정시모집을 두 단계로 하는데 1단계에서 이미 수능으로 모집정원의 2배수를 뽑아 우수자를 거의 독식한다”고 반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대도 우수학생 선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목고ㆍ자사고ㆍ비평준화 명문고에 혜택을 준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박 처장은 “지난해 수능에서 500점 만점 중 499.17점을 받은 최우수 학생이 내신 9등급 때문에 떨어진 반면 수능 460점을 받은 내신 우수자가 들어왔다”며 “내신 실질반영률을 50%로 높일 경우 법대는 최대 63%까지 당락이 바뀌는데 이게 페어(fair)한 거냐”고 되물었다.
 
Q4: 선진국에선 내신 석차 얼마만큼 반영하나.

A: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실은 미국 대학입학상담협회에 의뢰해 미국 대학이 고교 학급석차를 입학 때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2005년 미국 대학 582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전형요소 중 학급(class)석차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비율은 31.2%로 전체 전형요소 중 4위였다. 반면 우리나라엔 없는 선이수 학점제나 심화과정 등 대입준비과목 평점이 73.9%로 가장 높았다. 우리나라의 수능 격인 SAT(59.3%)는 내신 격인 GPA평점(53.7%)보다 중요한 판단요소였다. 차경준 처장은 “가령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는 통계만 해도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떤 남자와 사는지 등의 변수를 다 고려해서 나오는 것”이라며 “내신도 어느 고교ㆍ지역 출신인지 등의 관점을 넣어 통계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