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언제 다시 빛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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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17면

중앙포토

“내가 감독이라도 나를 뽑지 않을 것이다.”(5월 23일 경남전)

“발탁된다면 영광스럽게 아시안컵에 나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5월 30일 성남전)

‘반지의 제왕’ 안정환(31ㆍ수원 삼성)이 지난달 보인 심경 변화다. 그는 단호하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그는 지난 15일 아시안컵 최종엔트리 명단 발표를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핌 베어벡 감독의 입에서 그의 이름은 끝내 호명되지 않았다. 최종 엔트리 23명은 고사하고 예비명단 7명에도 들지 못했다.

한ㆍ일 월드컵을 앞둔 7년 전 상황과 비교된다. 2000년 이탈리아 페루자로 이적한 그는 벤치멤버로 전락, 시련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대표팀을 맡은 거스 히딩크 감독은 그의 발탁 여부를 놓고 고심했다. 소속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항서ㆍ정해성 코치는 실의에 빠진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이탈리아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은 그는 독기를 품었다. 그는 2000년 12월 20일 ‘숙적’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보란 듯 골을 터뜨렸다. 이후 그는 한ㆍ일 월드컵 때까지 상승세를 이어갔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눈부시게 활약했다. 그는 7년 전의 즐거운 추억을 생각하며 내심 태극마크를 원했다. 하지만 꿈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안정환은 왜 ‘찬밥’ 신세가 됐을까? 이는 ‘공백기를 보낸 선수는 그 기간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제 컨디션을 찾을 수 있다’는 축구계의 불문율과 맞물려 있다. 그는 독
일월드컵 이후 MSV 뒤스부르크(독일)와의 계약이 해지돼 6개월간 무적 선수로 지냈다.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해 자연스레 체력과 경기감각이 떨어졌다. 지난 1월 수원의 동계훈련부터 참가하며 몸을 만들었지만 페이스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나드손ㆍ에두 등 특급 용병들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결국 정규리그보다는 비중이 떨어진 컵대회에서만 뛰었다. 베어벡 감독은 “안정환이 소속팀에서 출전하기를 기다렸지만 지난 석 달간 1군에서 플레이한 시간이 한 경기 정도뿐이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잡지 못했다. 이름값 때문에 선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소속팀 차범근 감독의 안정환에 대한 평가도 냉정하다. 차 감독은 “예리함이 떨어졌다”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안정환의 강점은 순간적인 돌파에 이은 반 박자 빠른 슈팅이었다. 상대 골키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비수에 의해 움직임이 쉽게 읽히고 슈팅도 매섭지 못하다. 나드손과 에두에 비해 골 결정력도 처진다.

울산 현대의 임종헌 코치는 “몸을 끌어올리는 것은 경기장이 답이다. 컵대회만 주로 나서는 들쑥날쑥한 출전은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면서 회복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안정환은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직도 불만족스럽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달 경남전과 성남전의 골은 주워 넣은 것뿐이다.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몸이 한결 가벼워졌고 실수도 적어 경기력은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아시안컵 탈락으로 안정환의 국가대표 경력이 막을 내리는가’다. 의견은 분분하다. 일부 축구전문가들은 그의 나이 등을 감안,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고 본다. 해외진출 역시 힘들고,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해외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큰 경기에서 강한 점을 내세워 “아직 기회는 충분히 열려 있다”는 전문가도 있다.

모든 것은 안정환의 수원에서의 입지에 달려 있다. 아직 몸 상태가 100%는 아니지만 여름 휴식기를 최대한 활용,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한다. 팀 내 주전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특히 후기리그는 물론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 등 큰 경기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여준다면 또 한 번 일어설 수 있다. 베어벡 감독도 두 손을 들어 그의 합류를 반길 것이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수원에서 입지를 탄탄히 다질 경우 풍부한 A매치 경험과 조커로서의 탁월한 능력 등을 감안하면 2010년 월드컵도 바라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황선홍(39)도 34세의 나이에 한ㆍ일 월드컵에 출전, 공격수로서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현재 31세인 안정환에게도 나이는 장애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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