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최대 경쟁자 … 검색 탐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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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04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오른쪽)은 세계 1위의 갑부이면서도 캐주얼한 옷을 즐겨 입는 등 소탈한 면모를 보인다. 오른쪽은 빌 게이츠가 이영기씨 등 연구소 인턴들을 초청해 만찬 토론을 했던 ‘게이츠 하우스’의 잔디밭 연회장.[AP=본사특약]

19일 저녁 7시. 여기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근교의 메디나시에 있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사 회장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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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BK 21-MS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 중으로 현재 MS 본사 연구소 인턴 연구원이다. 한국인 인턴으로는 처음으로 빌 게이츠의 만찬 초청을 받았다. 참석자는 전 세계에서 온 인턴 200여 명과 연구소 임직원 30여 명.

만찬 파티가 열린 곳은 저택 아래쪽에 있는 잔디밭 연회장이다. 워싱턴 호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대충 접시에 담고 인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한순간 웅성거림이 멈추고, 참석자들이 일제히 계단 쪽을 바라본다. 빌 게이츠. 그가 내려오고 있다.

파란색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 편한 캐주얼 차림이다. 참석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든다. 인턴들이 그의 주위에 빙 둘러선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지만 얼굴 마주 보고 질문할 수 있는 자리는 빼앗긴 상태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세계에서 오셨지요? 인턴 여러분의 노력 덕에 MS가 더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인사말이 끝난 뒤 인턴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MS의 경쟁 상대는 어디지요?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경쟁자를 만나왔습니다. 하지만 항상 효과적으로 대처해와서 지금에 이르렀지요. 현재 가장 큰 경쟁 상대는 구글과 (리눅스처럼 소프트웨어의 설계도를 인터넷에 무상으로 공개하는) 오픈소스(open source)라고 생각해요. 검색을 통해 고객과 판매자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구글과 오픈소스가 잘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MS는 이들과 경쟁하는 것을 즐기고 있고 이번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구글이 웹에서 MS를 제치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MS는 왜 그러지 못했나요?

“그 분야에 대한 비전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웹의 중요성을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인식하고 있었어요. 많은 토론도 해왔습니다. 다만 실제 실행에 나서는 데서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고, 투자할 생각입니다.”

-구글에는 유튜브 같은 양질의 서비스가 많은데요.

“구글의 강점은 유튜브가 아닙니다. 검색이지요. 유튜브 같은 것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어요. 구글이 검색 부문만 우리에게 넘긴다면….”
인턴들의 질문이 날카롭다. 하지만 게이츠는 손짓을 섞어가며 여유 있는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MS 연구소를 현재의 중국과 영국, 인도 외에 다른 나라에 세울 계획은 없습니까?

“많은 사람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일단 사람이 많고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돼야 해요. 인구가 10억 명 있는 곳이면 연구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중국ㆍ인도ㆍ유럽이 그런 경우지요.”

한 인턴이 “앞으로 MS의 ‘블루오션’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게이츠는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다.

“블루오션이 무엇이지요? (인턴이 새로운 시장을 뜻한다고 답하자) 아, 예. MS가 만드는 모든 제품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입니다. MS 제품 중에서 새롭지 않은 것은 없어요. 새롭지 않다면 누가 돈을 주고 사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MS 연구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제시한다.

“여러분이 일하는 MS 연구소는 놀라운 연구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차세대 제품 개발에 기여해왔지요. 개인적으로는 제품 개발이 연구보다 더 매력적(Sexy)이에요.”

내가 MS 본사 연구소에 와서 놀란 것도 회사 측의 전폭적인 지원과 자율적인 연구개발 분위기였다. 연구원들에게 “이러이러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지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당신이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연구원 개개인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를 격려하고, 충분히 뒷받침해준다.

아울러 연구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화이트 보드. 개인 책상에 하나씩 있는 것은 물론이고, 회의실ㆍ휴게실ㆍ복도 등 연구소 곳곳에 걸려 있다. 언제 어디서나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MS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원동력이 아닐까.

인턴을 뽑아 연구에 적극 참여시키는 이유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포함한 다양한 자질을 파악해 연구원으로 뽑기 위해서다. 인턴들에게 한 사람씩 멘토를 붙여 매일 만나 대화하고 연구 지도를 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일까. 게이츠는 동료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내가 회사를 시작했을 때 폴 앨런 같은 굉장한 친구 10명이 있었어요.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창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잃을 게 하나도 없었지요. 학교로 돌아갈 수도 있고 나를 원하는 회사도 많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먹여주고 재워줄 수도 있었고요. 다만 한 가지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은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줄 월급이었습니다. 그들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어려움에 놓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게이츠는 “서서히 게이츠 재단 쪽으로 일을 전환하고 있다”며 “1년 후엔 MS 업무에는 20% 정도의 힘만 쓸 계획”이라고 말한다.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 등 믿을 만한 경영진이 있어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밤 9시30분. 게이츠의 배웅을 받으며 연회장을 나선다. 내년부터는 인턴 만찬이 발머의 집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연구원들의 얘기.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게이츠와의 만찬 자리에 참석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오늘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실에서 밤새워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송준화 교수님과 동료, 선후배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친다. MS 연구소에서의 경험과 게이츠와의 만남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미 세계 선두에 서 있는 하드웨어 분야가 소프트웨어 기술과 접목돼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을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이영기 KAIST 박사과정(네트워크 컴퓨팅) MS 본사 연구소 인턴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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