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평정한 드라마의 여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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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03면

백전노장 김수현(64ㆍ사진)의 힘은 대단했다. 화제리에 종영된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얘기다. 평균 30%대 시청률에, 최종회는 40%를 육박했다.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은 불륜 소재지만 ‘김수현은 다르다’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드라마 작가 김수현

친구 남편과 불륜에 빠지는 얘기다. 최근 몇 년간 가족드라마에 치중해온 작가가 오랜만에 정통 멜로로 돌아가 주목받았다. 환갑을 훌쩍 넘긴 작가는, 변함없는 독설과 팽팽한 에너지로 건재를 과시했다.

드라마는 불륜이라는 통속적 소재를 인간 드라마로 끌어올렸다. 가해자와 피해자, 선악의 이분법을 벗었다. 불륜을 일방적으로 단죄하지도 않고, 요즘 유행처럼 막연한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불륜의 끝은 그저 제각각 살아가는 것이다. 삶의 현실로서 불륜을 끌어오고, 그에 뒤따르는 다양한 인간형의 고군분투를 그렸다. 현실적이고 진화한 불륜드라마다.
김수현은 현존하는 최고의 드라마 작가다. ‘언어의 연금술사’ ‘흥행의 마술사’로 불린 지 오래다. 안방ㆍ건넌방을 오가는 TV속 일상을 통해 인간과 삶의 본질을 천착한, 빼어난 대중작가이기도 하다. 속사포 대사, 살아있는 강렬한 캐릭터, 숨가쁜 극 전개가 트레이드마크다. 높은 시청률 한쪽에 ‘너무 독하고 자극적’이라는 꼬리표도 달고 다녔다.

데뷔는 1968년 MBC 라디오 극본 공모 당선작 ‘저 눈밭에 사슴이’다. 72년 MBC TV ‘무지개’ 이후 50여 편의 드라마를 썼다. 홈코미디(‘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사람들’), 정통 멜로(‘청춘의 덫’ ‘배반의 장미’), 삶의 의미를 묵직하게 성찰하는 휴먼드라마(‘어디로 가나’ ‘작별’) 등 장르 폭도 넓었다. 지난 35년간 우리 TV의 홈멜로ㆍ가족극의 원형과 흥행공식을 구축했다는 평도 받는다.

극중 캐릭터처럼 똑 부러진 배우들을 선호해 일군의 ‘김수현 사단’을 이끌고 있다. 대본 토씨 하나 고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직접 배우들에게 리딩 연습을 시킬 정도의 파워맨. TV드라마는 곧 작가의 장르임을 입증한 스타작가다.

때론 포용적인 가부장에 대한 강렬한 향수로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내 남자의 여자’의 송재호가 대표적 예다), 일찍이 말 잘하고 자의식 강한 여성 캐릭터를 통해 ‘욕망과 말의 주체로서의 여성’을 등장시킨 대목은 눈여겨봐야 한다. 염치와 자존심, 인간적 품위가 작품의 주제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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