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밉다” 실신까지/어제 일서 정신대 국제공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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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 등 6개국 피해자 피맺힌 증언에 숙연/남북한 위안부 단상에서 얼싸안고 울음바다
제2차세계대전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국 등 6개국 출신 종군위안부로부터 증언을 듣는 「일본의 전후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가 9일 동경에서 열렸다. 동경·오사카(대판)의 시민단체가 주관한 이 공청회에는 유엔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초대돼 종군위안부들의 증언을 들었다. 이들은 종군위안부들의 증언을 유엔인권위원회에 보고서로 제출할 예정이다.
증언에 나선 당시 종군위안부들은 『강제로 연행돼 종군위안부 노릇을 했다』고 강조,일본정부가 정식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남북한 종군위안부 출신들이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해 눈시울을 붉혔다. 중국출신의 한 여인은 증언도중 『일본인이 밉다』고 소리친뒤 격정에 못이겨 실신했다가 15분만에 깨어나 8백여명 일본인 청중들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최초로 증언에 나선 한국인 강순애씨(64)는 『13세때 일본군 헌병이 집에 와서 끌고 갔으며 남방 파라오에서 위안부 노릇을 했다. 하루 30명 이상을 상대해야 했다. 아프다고 하면 구타를 당했다. 아프다고 말해 유방을 도려낸 여자도 있었다. 일본정부는 우리들은 강제로 연행하지 않았다는 등 거짓말을 하지 말라. 나는 지금도 매일 울고 있다』고 울부짖었다.
네덜란드출신으로 처음 일본에서 증언을 한 잔느 오펠씨(69)는 『지난 42년 자바(인도네시아) 수용소에서 위안소에 끌려가 위안부노릇을 했다. 17명이 함께 수용돼 있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나중 결혼후 남편과 잠자리를 할때였다. 그때마다 위안부시절의 공포가 되살아 났다. 용서할 수는 있어도 결코 잊을 수는 없다』며 흐느꼈다.
북한의 김영실씨(68)는 지난 41년 일본인들에게 속아 중국 오지로 끌려가 4년간 위안부생활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어떤 일본인은 돈을 벌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설령 돈을 벌었다해도 일본인들은 자신의 딸이나 여동생을 위안부로 내보내겠는가. 일본인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했다는데 대해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 비난했다.
김씨의 증언이 끝나자 일본정부에 대한 보상청구소송을 위해 일본에 왔다가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김학순씨 등 한국의 종군위안부 출신들이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남북한 종군위안부 출신들이 서로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다섯번째로 증언에 나선 중국의 만애화씨(64)는 『종군위안부 노릇을 하다가 일본군에 맞아 불구가 됐다』며 상반신이 비틀어진 자신의 몸을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원래 나의 키는 1백60㎝ 이상이었으나 일본군에 얻어맞아 뼈가 부러지고 치료도 받지 못해 1백40㎝ 정도로 작아졌다』고 밝혔다. 만씨는 『일본인이 밉다』고 소리치며 실신,인공호흡끝에 15분만에 깨어났다.
유엔인권위원회 환 보벤씨는 이들의 증언을 유엔에 보고하겠다고 밝혔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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