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물러서야 제 모습 보이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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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The face'전은 해외에서 인기 높은 김동유(42)씨의 작품 세계를 감상해 볼 좋은 기회다.

그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급부상했다. 2006년 5월 '마릴린 먼로와 마오쩌둥'이 3억2000만원에 팔린 덕분이다. 예상가의 25배가 넘는 액수이자 당시 한국 생존작가의 해외 경매가 최고액이었다.

올 5월 27일에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2억8500만원에 팔려나갔다(이날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홍경택의 연필 그림이 7억7000만원에 팔려 최고액 기록은 바뀌었다).

홍콩 경매야 중국 인물에 대한 관심과 화교 자본의 구매력이 함께 작용했을 테지만,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은 3년치 '물량'이 예약돼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의 그림은 작은 붓으로 직접 그린 우표 크기의 인물 수백, 수천 개가 모여 하나의 커다란 초상화를 만들어내는 게 특징이다.

사비나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맞은 편 벽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이 근엄하게 붙어있다. 점을 수백개 찍어서 150호 크기의 얼굴을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면 그 점은 점이 아니라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의 작은 얼굴이다. 역으로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을 이용한 김일성 전 주석의 초상화도 있다. 왼쪽 벽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붙어있다. 그 '재료'는 백범 김구의 얼굴이다.

전시 중인 20여 점의 작품이 모두 이런 식이다. 김구, 이승만, 케네디, 마릴린 먼로, 천도교의 최시형, 주은래, 이중섭, 잭슨 폴록, 고흐, 오드리 헵번 등 작고한 유명 인사들의 공식 초상을 우표 크기의 얼굴을 모아 표현했다.

재료 얼굴은 한 종류인 경우가 많지만 예외도 적지 않다. 잭슨 폴록의 초상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마릴린 먼로의 얼굴 수십 종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김구와 최시형, 30호 크기로 그린 이중섭은 3.1 독립선언 33인의 얼굴을 작은 그림으로 만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 그가 남긴 자화상 30종을 모두 이용했다.

손으로 세밀하게 그려나간 우표만한 자화상들은 생생하게 원본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놀라움을 준다. 엄청나게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작가는 "대학시절에도 인물 모델 그리기를 좋아했다"면서 "100호 크기를 완성하는데 옛날에는 석 달씩 걸렸지만 이제는 숙달돼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림의 메시지는 무얼까. 작가는 "바로 옆에 있어서는 잘 보이지 않고 멀리 떨어져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대상도 있다"고 말했다. "불교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지도자 생존시의 명성도, 팝스타가 대중에게 받았던 사랑도, 결국은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지는 무지개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나무, 숲에도 관심이 많다"면서 "앞으로는 그런 대상을 그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30일까지, 02-736-4371.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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