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향 평준화 공교육 대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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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든 브라운 차기 영국 총리가 교육강화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은 현 토니 블레어 총리가 10년간 몰두해온 교육개혁의 바통을 이어받아 2단계 업그레이드 작업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27일 영국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토니 블레어는 1997년 집권하자마자 "교육이 최대의 경제정책"이라며 공교육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영국은 '공교육에서 배울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립학교 학생들의 학력이 하향 평준화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전체 초.중등 학교의 93.6%를 차지하는 공립학교의 대수술이 불가피했다.

이에 따라 블레어 정부는 교육예산을 대폭 늘리고, 경쟁력 없는 학교의 퇴출 등 공립학교 간 경쟁을 유도하는 처방을 도입했다. 또 학생의 학업 성취도 등 학교운영 평가에 따라 학교에 대한 예산 지원을 차등 지급하도록 했다.

◆교육예산 대폭 증액= 집권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4.7%에 불과했던 교육예산은 10년이 지난 올해는 5.6%로 늘었다. 증액된 교육예산은 사립학교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놓인 공교육에 집중 투자됐다. 이 기간 중 교사 3만6000명과 학교교육 지원인력 15만4000명이 새로 증원됐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은 10년 전 2500파운드(약 460만원)였지만 올핸 5000파운드로 두 배나 늘었다. 2010년까지는 이를 6600파운드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투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체 초.중등 공립학교 2만2000개 중 1500여 학교의 학생 100여 만 명이 여전히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립학교 간 경쟁 유도=경쟁력 없는 학교들을 퇴출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교육개혁법도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학부모로부터 외면당해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교육전문회사가 일정한 지원을 받은 조건으로 인수해 학생들의 학력을 올린 사례도 자주 나오고 있다.

교육개혁법은 또 학교에 더 많은 자율권을 주고 기업.종교단체.학부모단체가 학교 운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을 해주고 있다.

기업이나 축구클럽도 자립형 학교를 세울 수 있게 됐다.

블레어가 소속된 집권 노동당 내 좌파는 그의 구상이 시장주의와 경쟁원리, 차별주의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블레어는 야당인 보수당의 지지에 힘입어 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 그는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영국의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이를 밀어붙였다.

◆대학은 기부금 유인책=블레어 정부는 또 대학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혁신적인 기부금 유인책을 내놓았다. 대학에 들어오는 기부금 2파운드마다 정부가 1파운드를 추가 지원하는 매칭펀드 방식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더 많은 기금을 모을 수 있게 됐다.

영국은 미국에 비해 대학에 대한 기부 문화가 활성화돼 있지 않아 대학들의 재정 사정이 좋지 않다.

이 때문에 시설 개선이나 교수진의 질이 미국보다 낮아져 한때 세계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와 같은 명문대들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옥스퍼드의 기부금은 36억 파운드로 미국 하버드대의 4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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