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속 다시 태어난 느낌"|소설 『길없는 길』 연재 끝낸 최인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천일기도를 끝낸 것 같습니다. 그냥 소설연재를 마친 게 아니라 정말 내 새끼하나 낳은 것 같습니다.』작가 최인호씨(47)가 본지에 연재하던 장편 『길없는 길』을 12월 1일(일부지방 2일)로 끝냈다. 89년 11월 1일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3년 1개월만이고 장수로는 2백자 원고지 7천장 분량이다.
『어두운 눈을 내가 다시 뜨고 보니 천지일월이 장관이요, 갑자 사월 초파일날 몽중으로만 보았더니 눈을 뜨고 다시 보니 그때 보던 얼굴이라. 얼씨구나 좋을시고 얼씨구나 좋도 좋네….』라는 심봉사 눈뜨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최씨는 『길없는 길』의 연재를 통해 새로운 세계, 새로운 문학에 눈뜨게 됐다고 한다.
『세속적인 욕망을 떠나 참다운 삶의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연재시작 당시에도 그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연재기간을 결제로 생각, 승려들이 스스로 산문에 갇혀 구도 하듯 내 도심의 집 문을 걸어 잠그고 그 길을 암중모색해 나갔습니다. 그 길에서 너무 많은 독자들로부터 편지와 전화, 그리고 자료적 도움도 받았습니다. 독자들의 그러한 도반적 우정에 힘입어 제 길을 찾아갔다는 안도감도 듭니다.』
20여년간 연재를 계속해 오면서도 최씨는 『길없는 길』을 통해 비로소 연재의 참맛, 문학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고 한다. 매일 강제된 숙제인 듯한 연재에 매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참삶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내걸고 독자와 도반의 정을 나누며 정진한 매일매일이 행복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인기에 연연했습니다. 상과 돈을 위해 소설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결국 문학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아니 작가를 소모시키고 문학을 망가뜨립니다.
이제 문학청년시절의 순수한 열정으로만 되돌아 가려합니다. 약 20년간 유명·인기로 인해 뒤범벅으로 몰락해 갔던 순수한 열정이 다시 샘솟습니다. 문학의 초발심으로 되돌아가 견딜 수 없는 그 그리움, 열정, 그리고 문학의 엄격함을 되잡겠습니다.』
66년 약관 21세로 등단, 『별들의 고향』『바보들의 행진』『불새』등 50여권에 달하는 단·중·장편을 발표하며 영화 등에도 참여, 대중문화의 기수로서 최대의 인기를 누렸던 최씨는 이제 문학의 초발심으로 돌아갔다. 『혼자 있을 때가 내 자신과 온전하게 있는 것 같다』며 산사는 아니지만 도심의 산문에 갇혀 인기·명예 등 속세의 것들과 절연했다.
『문학의 위기다, 시대가 틀려먹었다고 부르짖지만 말고 문인들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없어야 마땅할 더러운 논쟁까지 불러 일으켜 작품을 팔고있는 광고주의에 빠져들지는 않았습니까.』
문단을 떠나니 문학의 장과 판이 보인다는 최씨는 광고주의·권위주의 등 문단내부의 적을 경계했다. 특히 이 같은 광고·권위에 아부하며 유명해지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부 젊은 문인들을 경계했다.
『유명해져서 무엇합니까. 상 받아서 무엇합니까. 「이 주일의 인기가요」같이 순위다툼해서 무엇합니까. 각질화된 권위의 꼬붕이 돼 문학귀족행세해서 무엇합니까. 그런 것들을 위한 사교로 끊임없이 술 마시고 노래해서 무엇합니까.
무엇을 위한 문학입니까. 그런 것들은 아무리 자문해 보아도 문학이 아니지 않습니까. 문인의 최대의 자산은 고독입니다. 남으로부터의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서슬퍼런 고독만을 지키겠습니다.』<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