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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아름다운 역무원' 김행균씨의 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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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아저씨, 나으신 모습을 하루 빨리 보고 싶어요.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 반을 찾으시면 껴안아 드리고 싶어요. 지난번에 보내주신 과자는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나눠먹었어요. 다리 치료할 돈으로 과자를 사신 것 같아 먹기 싫었지만 우리가 잘 먹으면 빨리 나으실 것 같아 맛있게 먹었어요. 감기조심하시고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전남 나주 금천초등학교 4학년 2반 정희주)

'우리반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웃으며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금 또 저금통을 사다가 1백원, 2백원씩 넣고 있습니다. 정성을 담고자 직접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보냅니다.'(4학년 2반 담임)

지난 25일 경기도 부천시 순천향병원 6층 병실. 지난 7월 25일 서울 영등포역에서 열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려다 두 발을 잃은 '아름다운 역무원' 김행균(金幸均.42)씨가 금천초등학교 4학년 2반 학생들이 보내준 20여통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예쁘게 꾸며진 카드들은 각각 金씨의 쾌유를 빌고 있었다.

"지난 11월 초 학생들이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함께 동전이 빼곡히 들어찬 돼지저금통을 보내왔습니다. 차마 그 돈을 쓸 수 없어 아내로 하여금 과자를 사서 보내게 했죠. 아이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그는 사고 후 지금까지 모두 일곱차례 수술을 받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그의 양쪽 허벅지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채 한 겹의 거즈로 싸여 있었다. 지난 18일 아홉시간의 수술 끝에 허벅지의 피부를 오른쪽 다리 장딴지에 이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1월 말에는 열세시간의 전신마취 수술 끝에 오른쪽 다리 장딴지의 피부를 발가락이 절단된 오른쪽 발에 덧씌웠다. 11월 초엔 사고로 발목이 잘려나간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金씨는 향후 왼쪽 다리엔 의족(義足)을 찰 계획이다. 오른쪽 발은 수술 경과가 좋아 의족 없이 걸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그의 소망이다. 큰 불행을 겪었고, 여전히 통증이 심한데도 그의 얼굴은 밝았다.

"요즘 '무릎 위까지 다리를 절단하지 않는 것으로도 다행'이라며 아내와 함께 서로 위로합니다. 지난 20일엔 서해교전 당시 두 다리를 크게 다친 이희완(李凞玩)대위가 병원까지 찾아와 재활훈련뿐만 아니라 신기에 좋은 신발과 옷 입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어요. 어찌나 고맙던지요."

아내 배해순(40)씨는 "남편은 평소 생각이 매우 반듯한 분이었다"며 "세상에 남편 같은 사람이 많다면 항상 평화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편의 오른발이 회복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그땐 남편이 다시 한번 상처받을지도 모르니까요. 한편으론 요즘 남편과 서로 '정신만큼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자'고 다짐해요."(배씨)

金씨는 자신이 구한 아이의 부모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저는 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겁니다. 아이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그런 일을 당했는지 몰랐다고 봅니다."

퇴원 후의 계획을 물었다. "빨리 회복돼 제가 원래 있었던 자리인 역무원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또 그동안 치료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만큼 좋은 가장이 되고 싶어요. 수차례에 걸쳐 '많은 돈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며 약간의 돈과 함께 정성스러운 편지를 보내준 전남 보성군 득량면의 이발사를 찾아뵙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金씨는 1979년 철도고를 졸업한 뒤 24년간 철도 공무원으로 일했다. "어릴 때 살았던 서울 도화동에 있던 철길과 그때 들었던 기적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역과 열차.플랫폼.승객은 제 인생의 전부 입니다. 새해에는 승강장 위에 다시 서서 시민들을 편안하게 모시고 싶습니다."

하재식 기자<angelha@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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