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우리 모두 경계인인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는 경계인이다. 개인의 이념적 선호를 떠나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고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 기운다는 것이 불이익과 위험을 뜻한다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그게 나라의 운명이었고 민족의 처지였다. 그런 상황은 계속된다.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며 자유를 누리게 도와준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그런 미국이 북쪽의 동족을 험하게 다루면 우리는 분노한다. 인민을 굶기고 억압하는 북쪽 지도부와 휴전선 너머 동족을 구분해야 한다는 당위론도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용납 못할 독재자와 핍박받는 동족 사이에 놓인 경계인이다. 또 민족사의 절반 이상을 사대(事大)했던 상대인 동시에 민족분단의 책임을 면치 못할 나라건만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게 중국이다. 아직도 북한의 생명선을 자임하는 중국이지만 동족을 몰아세우는 미국의 악역 덕분에 중국은 선뜻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경계인이다. 21세기 미래의 동반자임을 천명한 일본이련만 역사해석과 종군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다시는 상종 못할 상대로 변하고 만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북측에 떳떳하게 못 따지면서도 일본인 납치문제가 대북협상에 걸림돌이 되면 일본 편들기가 거북스러운 게 우리와 일본 관계다.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만 가지만 그들 앞에 기죽지 않는 우리는 분명 현해탄을 사이에 둔 묘한 경계인이다.

황장엽씨는 송두율씨를 키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가 만난 黃씨는 그런 자기를 법적 고소한 宋씨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모두 경계인이다. 아니 지나온 역사 속에서 제 정신 갖고 살아온 지식인이라면 경계인이 돼야 마땅하다. 그런 번민 한번 해보지 않고 대접만 받고 살아온 이들이 오늘 우리 사회를 이토록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또 인민은 굶어도 제 한 몸 편하자고 한사코 변화를 거부하는 집단이 북쪽을 멍들게 만든 이들이다. 우리 분단역사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런 집단들이 그동안 마음에도 없는 민족공조란 허망한 최면을 걸어 이 땅의 운명을 요리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젠 우리 스스로 경계인임을 인정하자. 생존을 위해 회색지대를 걸어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자. 분단현실에서 오는 장애와 한계를 직시하자. 그래야 경계인의 정신분열증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 완전치유는 어렵더라도 경계인의 피해의식이 우리의 판단을 흔들어 놓는 경우만은 피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보는 눈, 그리고 북쪽의 동족을 보는 시각이 맑아질 수 있다. 또 동맹과 우방을 함께 어우르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관리해 갈 수 있다. 냉전이 끝나고 모두가 좀더 넉넉하고 자유롭게 살아보려 애쓰는 마당에 분단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민족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이라면 우선 경계인의 몸에 밴 비겁함부터 시인하자. 그리고 남을 탓하기 앞서 나의 허물부터 헤아려 보자.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연말, 금강산을 찾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다. 북핵으로 한해가 몸서리쳤지만 남북 간에 도로가 뚫렸고 서로 오고간 이가 1만5천명이다. 민족의 명산을 찾은 이들도 올 한해 6만5천명을 훌쩍 넘었다. 새해가 고비다. 특검과 총선은 혼탁한 남쪽 사회가 맑아질 수 있는 기회다. 또 새해는 북한이 핵 도박을 중단하고 바깥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다. 남북 모두 경계인의 정신적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세계사의 본류(本流)에 동참해야 한다. 금강산의 새벽은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영감을 뿌리며 새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강산에서)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는 경계인이다. 개인의 이념적 선호를 떠나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고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 기운다는 것이 불이익과 위험을 뜻한다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그게 나라의 운명이었고 민족의 처지였다. 그런 상황은 계속된다.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며 자유를 누리게 도와준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그런 미국이 북쪽의 동족을 험하게 다루면 우리는 분노한다. 인민을 굶기고 억압하는 북쪽 지도부와 휴전선 너머 동족을 구분해야 한다는 당위론도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용납 못할 독재자와 핍박받는 동족 사이에 놓인 경계인이다. 또 민족사의 절반 이상을 사대(事大)했던 상대인 동시에 민족분단의 책임을 면치 못할 나라건만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게 중국이다. 아직도 북한의 생명선을 자임하는 중국이지만 동족을 몰아세우는 미국의 악역 덕분에 중국은 선뜻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경계인이다. 21세기 미래의 동반자임을 천명한 일본이련만 역사해석과 종군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다시는 상종 못할 상대로 변하고 만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북측에 떳떳하게 못 따지면서도 일본인 납치문제가 대북협상에 걸림돌이 되면 일본 편들기가 거북스러운 게 우리와 일본 관계다.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만 가지만 그들 앞에 기죽지 않는 우리는 분명 현해탄을 사이에 둔 묘한 경계인이다.

황장엽씨는 송두율씨를 키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가 만난 黃씨는 그런 자기를 법적 고소한 宋씨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모두 경계인이다. 아니 지나온 역사 속에서 제 정신 갖고 살아온 지식인이라면 경계인이 돼야 마땅하다. 그런 번민 한번 해보지 않고 대접만 받고 살아온 이들이 오늘 우리 사회를 이토록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또 인민은 굶어도 제 한 몸 편하자고 한사코 변화를 거부하는 집단이 북쪽을 멍들게 만든 이들이다. 우리 분단역사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런 집단들이 그동안 마음에도 없는 민족공조란 허망한 최면을 걸어 이 땅의 운명을 요리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젠 우리 스스로 경계인임을 인정하자. 생존을 위해 회색지대를 걸어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자. 분단현실에서 오는 장애와 한계를 직시하자. 그래야 경계인의 정신분열증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 완전치유는 어렵더라도 경계인의 피해의식이 우리의 판단을 흔들어 놓는 경우만은 피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보는 눈, 그리고 북쪽의 동족을 보는 시각이 맑아질 수 있다. 또 동맹과 우방을 함께 어우르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관리해 갈 수 있다. 냉전이 끝나고 모두가 좀더 넉넉하고 자유롭게 살아보려 애쓰는 마당에 분단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민족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이라면 우선 경계인의 몸에 밴 비겁함부터 시인하자. 그리고 남을 탓하기 앞서 나의 허물부터 헤아려 보자.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연말, 금강산을 찾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다. 북핵으로 한해가 몸서리쳤지만 남북 간에 도로가 뚫렸고 서로 오고간 이가 1만5천명이다. 민족의 명산을 찾은 이들도 올 한해 6만5천명을 훌쩍 넘었다. 새해가 고비다. 특검과 총선은 혼탁한 남쪽 사회가 맑아질 수 있는 기회다. 또 새해는 북한이 핵 도박을 중단하고 바깥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다. 남북 모두 경계인의 정신적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세계사의 본류(本流)에 동참해야 한다. 금강산의 새벽은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영감을 뿌리며 새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강산에서)길정우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