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알맹이 어디있나/비행테이프 “실종”세가지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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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러,ICAO에 제출 위해 뺐을 가능성/격추책임 면하려 군·정보기관서 감춰/상태 워낙 나빠 해독 안되자 빼고 전달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건네준 대한항공 007기 블랙박스에 비행정보를 기록한 비행경로기록장치(FDR)테이프가 빠져 있는 사건과 관련,러시아 언론들은 30일까지도 이 사건을 논평없이 사실보도 하고 있을뿐 러시아 외무부나 국방부·대통령실의 공식논평이나 경위설명은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의 발생경위와 의도에 관한 각종 추측만이 나돌고 있다.
현재 양국 관계전문가들이 추측하고 있는 가능성은 크게 다음과 같이 세가지 시나리오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러시아측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전달하기 위해 FDR자료를 빼놓고 전달했을 가능성이다.
이는 옐친대통령이 지난달 14일 방한을 앞두고 한국특파원단과의 기자회견때 사고기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관련자료와 블랙박스를 한국에 인도하는 것도 좋지만 국제기구인 ICAO에 전달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하다고 말한 것에 근거한 추론이다.
또한 최근 러시아측이 비밀리에 새롭게 발견된 자료와 견해를 ICAO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바 있어 여기에 FDR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의 가능성은 옐친대통령은 관련자료 일체를 한국측에 전달하라고 명령했으나 이에 반발한 군부 및 정보기관이 이 명령에 반발,FDR를 빼돌렸을 가능성이다.
이는 반옐친 세력의 반발이거나 사건에 책임을 지게될지도 모르는 당사자들이 자료를 고의적으로 감추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와 관련,이즈베스티야지는 지난달 25일 러시아에는 KAL기 사건에 대한 완전한 진상규명 대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음을 상기시켜 이러한 추론의 현실적인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즈베스티야지의 논설위원인 안드레이 일레슈는 30일 국방부의 정통한 소식통을 통해 진상규명에 가장 중요한 FDR테이프가 모스크바내 군부대의 모기관에 보관중임을 확인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구체적인 보관장소는 현재 미묘한 상황이어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세번째로는 당시 국가보안위원회(KGB)·국방부·크렘린의 문서보관소를 장악한 옐친대통령측이 KAL기 관련자료를 입수했으며 이때 FDR도 확보했으나 확보한 FDR의 상태가 지극히 나빠 해독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이날 제외한채 한국에 넘겨주었을 가능성 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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