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을 전전하는 해외동포의 애환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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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조국의 분단으로 고향을 상실하고 떠도는 해외동포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장편소설 두 권이 출간됐다.
최근 재일 교포 작가 이회성씨(57)는『유역』(한길사 간)을, 러시아 동포작가 맹동욱씨(61)는『모스크바의 민들레』(예음 간)를 펴냈다. 각각 사할린과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일본과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이 소설에서 뿌리뽑힌 채 중앙아시아·일본 등지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삶을 통해 인간에 있어서의 고향과 조국, 그리고 이념의 의미를 묻고 있다.
사할린 태생인 이씨는 와세다 대를 졸업하고 조총련에 관계하다 소설을 쓰기 시작, 72년『다듬이 돌을 두드리는 여자』로 재일 한국인 최초로 일본최고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출간된『유역』은 일본의 유력 문예지『군상』92년 4월 호에 전작으로 발표된 것을 작가 김석희씨가 옮긴 것으로 재일 작가 2명이 카자흐공화국 작가동맹 초청을 받고 중앙아시아지역을 한달 동안 취재하며 보고들은 이야기를 기둥줄거리로 하고 있다.
주인공 춘수는 이른바「고려인」들이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뼈아픈 역사를 취재하기 위해 89년 여름 중앙아시아로 가 뿌리뽑힌 채 낯선 땅으로 옮겨진 소련 조선인들의 쓸쓸한 삶들과 만난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다.
춘수의 아버지는 사할린에 살면서 일제협력기관 간부로 활동하다 일제가 패망하자 자신의 식솔만 거느리고 일본으로 빠져 나왔다. 일신의 안전을 위해 동포를 저버린 아버지의 부끄러운 과거를 안 춘수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작가 이씨는 자신이 투영된 인물 춘수를 통해 동구권국가들이 동요를 일으키면서 현실사회주의가 몰락의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89년 시점에서 지금까지「북조선」을 믿고 의지하던 사람으로서 조국의 의미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지금은 이데올로기를 운운하는 사람이 훌륭한 게 아니라 그 사상이나 신념을 인간으로서 실천하는 사람, 민족과 인간을 동시에 끌어안으려 애쓰는 사람이 감동을 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민들레』는 함북 학성에서 출생, 북한체제를 살다 소련으로 망명해 현재 모스크바 쉐프킨 고등연극대학 교수로 있는 맹씨의 자전적 소설. 맹씨는 38선이 그어진 후 세 차례나 월남을 시도하다 아오지수용소로 끌려간다. 거기서 6·25를 만난 맹씨는 강제 징집돼 인민군 예술단 복무 중 소련 유학생으로 발탁된다.
유학 중이던 58년 김일성 개인숭배 반대운동에 참가했던 맹씨는 소련으로 망명, 알마아타에서 한인 연극운동 등을 펼치며 활동하다 능력을 인정받아 78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얻게 된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을 좇고 있는 이 작품은 해방 직후 북한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소위「지식인 부르좌 반동분자」들의 당시 의식상대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삶도 다루고 있다. 그러나 1992년 사회주의가 완전히 몰락된 시점에서 쓰여진 이 작품은 너무 반공 적 시각에 서 있는 것이 흠이다.
조총련에서 활동하다 이제 중도적 시각으로 돌아온 이씨와 소련작가동맹원으로 공훈예술가 칭호까지 방은 맹씨의 반공 적 작품을 통해 탈 이데올로기시대에 흔들리면서 조국의 의미를 되찾고 있는 교포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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