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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바꾸는 '실용 리더십' (下) 총리 "8%가 뭐 대단하냐" 역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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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앞으로 정부는 사회 각 부문의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할 것이다."

베트남 경제정책을 총지휘하는 경제계획투자부(MPI)의 응우옌 홍 푹 장관은 15일 타인호아 성에서 열린 고위 공무원 세미나에 참석해 이렇게 선언했다. 겉으로는 아직도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있지만 이런 구호는 여느 자본주의국가와 전혀 다르지 않다. 푹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각 경제 및 행정단위 간 치열한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행정기관 간에도 경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서로 경쟁해 성장 속도를 높이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성장의 목표는 당연히 '잘사는 나라'다.

푹 장관은 "정부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성장에 필요한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에 국내총생산(GDP)의 41%인 346억 달러를 각종 인프라 건설 및 시스템 효율화 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푹 장관은 이어 내년 경제성장률 9%대를 반드시 실현하고 그 뒤에는 두 자릿수 성장 시대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자릿수 성장 안 된다=지난해 여름 얘기다. 갓 취임한 응우옌 떤 중 총리가 MPI를 방문했다. 경제정책을 보고받고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푹 MPI 장관은 자신 있게 올해 경제성장은 목표치인 8%를 넘길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했다. 당연히 칭찬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떤 중 총리는 이렇게 역정을 냈다고 한다.

"8% 성장이 뭐 그리 대단한가. 베트남의 잠재력을 고려하면 낮다.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두 자릿수 성장에 도전해야 한다." 그 뒤 푹 장관의 머릿속에는 8~9%는 고성장 축에 들지 못한다는 인식이 심어졌다. 크레디 스위스 아시아의 조스 이시도로 카마초 부회장은 최근 미국 경제전문잡지 포춘에 "베트남이 속도와 효율성, 그리고 자신감으로 중국 못지않은 신흥 개도국으로 전 세계에 데뷔했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미국의 인텔이 지난해 호찌민시에 3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을 때 포춘 기자는 브라이언 크르자니치 인텔 부사장에게 "왜 베트남이냐"고 이유를 물었다. 이에 인텔 부사장은 "베트남 정부가 매우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며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그들과의 협상은 열린 마음으로 아주 쉽게 진행됐다. 우리가 원하는 인력이 있었고, 낮은 임금도 마음에 들었다"고 덧붙였다. 투자 계획이 확정되자 베트남 정부는 인텔에 베트남 교사들에게 정보기술(IT) 교육을 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현재 인텔은 자사의 '앞서가는 세계 프로그램(WAP)'을 통해 무려 3만 명에 달하는 교사에게 IT 연수 기회를 주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인텔은 미국의 휼렛패커드(HP), 대만의 에이서 등과 합심해 베트남에 265달러짜리 컴퓨터 10만 대 보급 운동을 펼치고 있다. 모두 베트남 정부가 정보화 교육에 미래가 달렸다며 간절히 요청해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올 2월 떤 중 총리는 IBM 닉 도노프리오 부사장에게 "각종 경제.산업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데 IBM이 파트너가 돼 달라"고 말했다. 이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정부와 IBM은 2월 말 '기술 개발은 물론 산업 및 정보화 정책 개발과 시행 과정을 논의하고 협력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떤 중 총리는 양해각서 체결 후 각료들에게 "해외기업을 단순히 유치하는 것으로 끝나면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무조건 선진 기업에서 배우고 이를 사회에 적용하는 실천 정신이 없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강대국 등거리외교로 국익 극대화=미국과 일본이 베트남을 중심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에 적극 진출해 중국의 동남아 영향력 강화를 견제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를 역이용해 중국과 미국, 일본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절묘한 실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 6월 19일자 홍콩 문회보(文匯報)의 분석이다.

미국과 일본에는 중국 위협론을 이용해 군사교류 강화와 투자를 유치하고, 중국에는 동남아 주도권 확보를 내세워 베트남에 투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외교 전략이라는 것이다. 응우옌 민 찌엣 주석의 미국 방문도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이라는 게 문회보의 분석이다.

최형규.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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