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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한국기업 유치 열올리는 청도|산동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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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누구든지 합작사업을 유치해 오면 외국기업이 투자한 액수의 0·5∼1%의 커미션을 지급한다.』
산동성 추성시 시장이 지난달 초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발표한 장려 책 가운데 하나다. 외국투자기업체에 공장부지·건물·수도·전기 등 각종 우대와 면세 혜택을 제공하는 외에 외국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현상금」까지 내건 것이다.
추성은 출생 1개월 남짓한 신생도시. 이곳의 원래 지명은 추현이다. 유교의 아성인 맹자의 출신지인 이곳이 역사 속의 지명을 바꾸면서 현대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발달된 수륙교통과 통신망, 매장량 41억t의 석탄 등 풍부한 자원을 내세우며 공업화를 추진하는 한편, 맹묘·맹부·맹림 등 맹자와 관련된 관광자원을 선전, 외국투자기업을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광지 발돋움도>
맹자의 스승 공자의 고향인 곡부는 관광지로서도 스승 뻘. 공가에서 대대로 전수돼 왔다는「공부가주」가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자「맹부가주」도 곧 뒤따랐다.
공자탄신행사도 전통문화를 잇는다기보다 관광수입에 본뜻이 있어 보인다. 곡부의 맥주·배갈(백주)을 선전하는 대형깃발이 축하행렬을 선도하는 광경은 바야흐로 중국에「상업주의 문화」가 판을 치기 시작했음을 실감케 한다.
청도는「국내의 외국」이란 뜻인 국내 국으로 불리던 왕년의 조계. 독일이 차지했던 청도의 경관은 독일 여느 도시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
독일의 고성을 본떠 1903년에 지었다는 영빈관은 그 소장품들이 모두 골동품가치가 있는 박물관이다.
50년대 고 마오쩌둥(모택동)이 청도를 찾으면 묵고 갔다는 침실·서재, 심지어 화장실까지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입장료는 15위안(한화 2천2백50원).
귀족들이 금방 파티를 끝내고 사라진 듯 그랜드피아노와 대형 샹들리에로 장식된 그랜드 볼 룸은 공간 전체가 고스란히 1백년의 연륜을 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엔 싸구려 조명기구 하나, 큼직한 포터블음향기기와 마이크, 색종이로 오려붙인 농납 OK(가라오케)광고가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던 길도 영빈관(최근 호텔로 개업)부사장 링용가오(정수고)가 어색하게 웃으며 저녁에 한잔하러 오라고 권유한다.「위대한 모 주석」이 머물렀던 성역으로 잡인들의 출입이 금지됐던 이곳이 관광자원으로 바뀌어 모 주석이 누웠던 침대에서 1박 3백 위안을 내고 머무를 수 있을 만큼 세태는 변한 것이다.
개혁·개방 바람은 청도 시 전체를 온통 들쑤셔 놓은 것 같다. 홍콩·대만의 부동산자본이 몰려온 것과 청도 시의 동부개발 구 건설사업이 맞물리면서 부동산 붐이 한창이다.
시 중심 가를 차지하고 있던 시 당 위원회·시 정부·정협(시의회)의 건물과 부지가 몽땅 팔려 나갔다.
해안 통의 북해조선소는 5억 위안에 팔렸다. 조선소 이전경비 4억 위안을 빼고도 1억 위안이 고스란히 남는 액수다.
『이런 장사를 하지 않고 우리가 뭘 하겠는가.』계약이 끝난 뒤 시의 대외 경제무역위원회 주임이 기염을 토했다고 전한다.
해변의 중앙에 자리한 낡은 조선소는 철거되고 나면 관광지로 재개발된다.
조선소시설의 이전과 함께 청도가 기항지인 중국해군 북해함대도 관광지개발계획에 밀려 군항시설을 옮겨갈 계획이다
『중국엔 원래 부동산이란 말이 없었다. 공장마다 계획경제아래 상품으로서는 아무 가치 없는 물건을 만들어 내 재고품을 가득 안고 있었다. 경제는 사실상 다 죽었던 것과 다름없었다.』

<한국지역을 설정>
청도 시의 한 인사는 이같은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에 외국투자가 쏟아지면서 활기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 5대항의 하나인 보도가 개방된 것은 지난 84년. 그러나 무사안일로 시간을 허송해 발전상은 보 잘 것 없었다. 광주·심천 지역의 외국업체 현지고용원 1인당 한달 평균 월급이 1천 위안인데 비해 북경은 7백∼8백 위 안, 청도는 3백 위안 수준으로 뒤져 있다
청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중국 국무원이 지난 90년 8차5개년 계획과 10개년 개발계획에서 청도를 최우선 개발지구로 지정하고, 이어서 40대 초반의 의욕적인 위위싱(유옥성)시장(당 서기 격임)이 부임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외국투자업체가 87넌 고도에 첫발을 디딘 후 4년간 모두 36개에 지나지 않던 것이 91년 한해동안 83개 업체가 진출했다.
올 들어 8월말까지 70여 개 업체가 입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배라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청도 시의 공업단지인 영산 구에는 8월말 현재 합작투자계약 1백53건 가운데 40%, 실제 투자한 72개 업체의 60%를 한국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1월 등소평의 남 순 이후 전반적인 호전과 함께 8월 한중수교를 전후해 한국기업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청도 시 진출업체 수는 홍콩·대만·싱가포르·일본·구미를 모두 누르고 한국이 제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규고교과정에 한국어 방을 설치해 한족출신 통역 2백 명을 신속하게 양성하자』고 유 시장이 제안한 것은 이같은 한국기업의 약진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의 현지인 고용이 3만 명을 넘고 있는데 비해 동북 3성(만주)과 달리 조선족이 거의 없는 실정에서 한중수교에 한발 앞서 과감하게 한국어 전문인력 양성에 착수한 것이다.
중국 북방의 이상적인 투자지역으로 꼽히는 산동성은 한국기업에 거대한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다. 8월말 현재 1백77개의 기업이 진출한 한국은 산동성의 3대 무역파트너로 양국수교에 따라 제1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기업의 대중투자 가운데 80%가 산동성에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연대·위해 등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도시들이 청도와 경합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연대 시는 최근 7년 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 와룡외상 투자개발구안에 1평방km의「한국가공 구」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한국기업 투자촉진 규정」도 마련했다. 수교이전 단 한곳뿐이던 한국기업이 지금은 48개 업체가 진출을 협의하고 있다.

<조선족처녀 득실>
연대시의 결론은『한중합작의 최적 조건을 갖춘 곳은 바로 연대개발 구』라는 것이다.
위해 시라고 수수방관만 하는 것은 아니다.「기술·산업개발 구」를 설치한 것은 지난해로 한발 늦었지만, 불과 6개월만에「한상」투자 40여건의 실적을 올렸다. 여기에서도 1평방km를「한국투자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개발 구는 아직 황토를 갈아 놓은 채 공사중이지만 위해 항으로 들어오는 한국의 중소업체투자가들의 발길은 계속되고 있다.
위해의 유일한 3성급 호텔은 한국인 전용호텔로 불릴 정도로 한국기업인들로 붐 빈다.
낮엔 식당, 밤엔 가라오케 용도로 꾸민 한식식당에는 화장을 진하게 한 조선족 처녀들이 득실거린다. 개장국·냉면 등의 식단을 한글 간판으로 내건 집만 30여개소. 인구12만의 한적한 위해가 한국 붐으로 활기에 넘치고 있는 것이다.
산동 반도의 동부에서 3각 점을 형성하는 청도·연대·위해의 개발경쟁은『삼국지』를 연상시킬 정도다.
위해 시는 석탄·석유수출 및 컨테이너 수출항구를 설치해 선적능력을 2백만t에서 5배로 늘리려 한다.
청도는 현재의 4천7백만t에서 95년까지 1억t으로 항만시설을 확장할 계획이다.
위해 시가 공항을 건설해 제남∼심천∼북경을 연결하려는데 비해 청도는 지난달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의 승인아래 유정공항(한반도를 작전반경에 포함하는 군용공항)을 외국적 민간항공기에 개방, 국제공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청도∼위해는 육로로 왕복8시간거리. 인천항에서 선적된 컨테이너가 위해에서 하역된 다음 다시 청도로 수송되는 경비는 막대하다
그러나 청도∼인천간 직송로 개설에 위해는 막무가내로 반대다.
청도∼위해간 도로확장은 또 연대가 반대하라. 연대가 한중교역에서 청도∼위해 축이 강화되면 소외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인구규모도 위해의 40배가 넘는 정도지만 성할 시로서 위해와 청도는 동격이기 때문에 이견이 성내에서 조정될 수 없는 처지다.

<직항로 개설 난관>
청도 시는 성안에서 승부가 나지 않자 국가차원에서 대한 직항로 개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에는 위해가 걱정이다.
그러나 이같은 도시간 경쟁이 전체로 보면 중국 경제발전의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정부는 대륙의 연안을 따라 남쪽의 광동성 일대는 홍콩, 복건성은 대만, 산동성은 한국과의 연계를 통해 발전시키는 전략을 추진해 오고 있다.
한반도를 향해 마치 손을 내밀듯 뻗어 있는 산동 반도는 청도·연대·위해의 흡입 판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투자를 경쟁적으로 유치(외인)하고, 이 효과를 내륙의 개발을 위해 확산(내련)해 나가는 전진기지인 것이다.
위해에서 청도로 돌아가는 도로의 좌우로 펼쳐진 농경지에는 커다란 두루미처럼 석탑들이 띄엄띄엄 도로를 향해 목을 뽑고 서 있다.
한결같이「○○마을 기술개발 구」라고 새겨 놓은 탑들은 농촌마을들이 외자유치를 위해 세운 선전물들이다.
농촌도, 도시도 현상금 붙은 외국투자기업을 찾기 위해 모두 들고나서고 있는 광경이었다.

<글=전택원 특파원·사진="신동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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