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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장들은 왜 고양이에 미칠까

중앙일보

입력

세 명의 여대생이 꽃가게 유리창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유리 너머 가게 안에 있는 검정 고양이의 움직임을 구경하며 "너무 예쁘다"고 탄성을 지른다. 이곳은 애완동물을 파는 가게나 동물병원이 아니다. 마포구 동교동 미술학원 길에 위치한,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꽃가게 '바질'에는 고양이 7마리가 있다.

7마리가 기거하지만 조용하기만 하다. 박현미(33)씨는 4년 전 이곳에서 꽃가게를 시작했다. 박씨는 직장생활을 접고 가게를 열면서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종업원 없이 혼자 운영하는 가게여서 고양이들을 그냥 풀어두었다. 고양이는 조용하고 독립심이 강한 동물이라 손님을 괴롭히거나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 노는 모습이 귀여워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양이 덕분에 가게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고 박씨는 설명한다. 고양이를 만져보기 위해 가게로 들어왔다가 꽃을 사서 나가는 손님도 더러 있다. 덕분에 이 거리를 오가는 여대생들 사이에 이 가게는 '꽃파는 고양이 가게'라는 애칭을 얻었다.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미용실 'BKLOVE'에서도 여자 주인이 고양이를 기른다. 은빛 털에 반짝이는 눈을 가진 페르시안 친칠라 종의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가 가게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주인은 분주하게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고, 고양이는 저 혼자 털 손질에 여념이 없다. 1년 전 미용실을 창업한 이상분(27)씨는 "왜 가게 안에서 고양이를 키우느냐"는 질문에 "워낙 조용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해 가게 안에서 키우기 좋다"고 했다. "손님들도 고양이가 혼자 노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면서 "있는 듯 없는 듯, 그게 고양이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곳은 창업한 지 1년 만에 고양이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미용실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에서는 '홍대앞 고양이 키우는 미용실'로 유명세를 탔다.

2~30대 젊은 소규모 점포 창업가들이 모인 거리에는 유난히 고양이가 많다. 꽃가게 '바질'과 미용실 'BKLOVE'외에도 소품가게, 주점 , 옷가게, 부동산 등 다양한 업종의 점포 영업장에서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홍대앞은 말할 것도 없고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압구정 뒷골목까지. 고양이를 가게 안에서 직접 키우는 가게도 많지만 인테리어를 온통 고양이 투성이로 해놓은 곳도 자주 눈에 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고양이 인형부터 고양이 스티커, 고양이 그릇, 심지어 간판에 고양이 머리를 크게그려 놓은 곳도 있다.

최근 들어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사람의 수가 부쩍 늘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국내 애완동물 가운데 고양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 아직도 강아지가 가장 많은데 유독 소규모 창업시장에서는 고양이에 열광할까. 고양이를 가게 이미지로 내세우거나 가게 안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창업주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30대 전후의 독신 여성이라는 것.

한국고양이협회장 신정진(40)씨는 고양이의 특성이 이들 여성 창업주의 성격과 잘 맞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씨는 "고양이는 독립심이 강해 혼자 두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주인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서 "전문직 종사자나 프리랜서, 개인사업을 하는 여성들이 고양이를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늘 곁에서 보살펴야하는 개와 달리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고양이의 특징이 개인 사업을 하는 여성의 생활 방식이나 성격과 잘 맞다는 얘기다.

젊은 창업가들이 유독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길들여지지 않으면서도 사람과 긴밀하게 교제하는 사교성이 고양이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서 "많은 남성들이 주인만 쳐다보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개를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에 강남구 신사동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며 고양이를 기른다는 최진희(36)씨는 "개가 보호본능을 일으킨다면 고양이는 동료의식을 준다"면서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면서도 때로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양이는,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반려동물"이라고 말했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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