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농고 실습기자재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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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농업계고교의 정원미달사태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농업기피풍조가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지만「영농꿈나무」를 키워야 할 농고가 실험·실습 시설·기자재미비, 정부의 재정지원부족 등으로 제구실을 못하는 것도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
정부는 과학영농을 외치고 있으나 농고 생들은 여전히 노동력을 이용한 전근대적 실험·실습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
게다가 형식에 그치고 있는 정부의 영농후계자 육성대책도 농고의 사양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실험·실습시설미비=화성군 향남면 발안농고는 33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농고. 그러나 이 학교가 갖춘 실험·실습설비는 교육부가 정한「실업계학교실험·실습시설 설비기준」의 30%에 그치고 있으며 이들 시설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들이다.
일반농민들이 운영하는 양계장들도 사료공급·분뇨건조·달걀수거·크기분류 등을 위한 자동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경기도내 12개 농고 축산과중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양계장을 보유한 농고는 단 한곳도 없는 실정.
또 농기계정비기능사 2급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10여종의 농기계 작동·수리 법 등을 배워야 하나 발안농고는 80년대 초에 쓰이던 구형농기계 5종만을 보유하고 있다.
고양시 삼송동 고양종고도 온실 1개 동·비닐하우스 등 기초실습시설과 경운기 2대, 트랙터·동력살수 기·관리 기 등 구식 농기계를 1대씩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형식적인 정부지원=정부는 지난 81년부터 잘사는 농어촌건설을 위한 농어민후계자 육성시책으로 농고·농업전문대출신, 4H회원들 중 영농경험·기술이 있는 만20세∼40세미만의 사람을 농어민후계자로 선정, 1인당 1천만∼1천5백 만원의 영농자금을 5년 거치 5년 균등분할상환조건으로 융자하고 있다.
경기도는 81년 이후 농어민후계자로 모두 6천2백30명을 선발, 영농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나 평균 1천만원인 융자금으로는 축사 한동도 지을 수 없는 실정이어서 전체의 20%가 영농을 포기하고 있다.
또 적자영농으로 융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후계자도 1천명을 헤아리고 있다.
특히 지난83∼85년에는 융자금으로 병든 외국 소를 마리 당 평균 2백 만원씩 주고 구입했다가 50만원씩 손해보고 되파는 바람에 소 값 파동으로 무더기 도산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각 시-도교육청이 관할지역 농고에 지원하는 실습경비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농업 계 고교 1개과에 지원하는 실습 비는 연간 40만원으로 공고지원비의 3분의1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게다가 실습장비·씨앗 등을 구입하는 경비는 학생들이 실습용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과학·첨단 영농기술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육학과장 이용환 교수는 이와 관련,『사회적으로 농업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농고교육이 단순노동을 필요로 하는 전근대적 현장실습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어 입학정원미달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농업진흥을 위해서는 농어민후계자에 대해서 병역면제, 현실적인 영농자금지원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각 농고가 기계·자동화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대폭적인 재정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희·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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