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불똥' 금융가로 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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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금융가에 때 아닌 종합부동산세 '불똥'이 튀고 있다. 주로 서울 강남을 비롯해 부동산값이 크게 오른 지역의 은행이나 증권사의 영업점이 세 들어 있는 건물주들이 종부세를 세입자들한테 전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가 건물은 종부세 대상이 아니지만 상가가 있는 토지는 부과 대상이다.

금융사들은 급등하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월세가 싼 곳으로 옮기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은 1층'이라는 상식과 달리 부동산 가격이 싼 2층 이상으로 영업점이 점차 이동하는 추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강남 부동산값이 뛰면서 매년 임대료가 인상돼 왔는데, 종부세까지 월세에 전가되는 바람에 인상폭이 더 커졌다"며 "종부세 회피 매물이 쏟아져 월세가 떨어지기는커녕 목이 좋은 자리는 오히려 잡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종부세 폭탄' 그대로 전가=서울 압구정 지하철역 네거리에 있는 한국투자증권 압구정PB지점. 보증금 40억원에 월 4000만원씩 주고 1층을 쓰고 있었지만 최근 건물주로부터 월세를 세 배로 올려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종부세가 오른 만큼 월세를 올려 받겠다"는 얘기였다. 워낙 자리가 좋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같은 건물 4층으로 옮기기로 했다.

같은 건물 2층에 세 들어 있는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보증금 40억원에 월세 2500만원을 내고 있었는데 역시 세 배를 요구하는 바람에 재계약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단 은행 측은 10% 이상 올리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월세가 싼 다른 곳을 물색 중이다.

신한은행 점포개발부의 한 관계자는 "압구정동을 비롯한 강남 쪽의 점포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며 "전적으로 종부세 영향만은 아니지만 종부세 여파로 부동산 투자가 과거 아파트 일변도에서 상가 쪽으로 옮겨가면서 상가 가격이 크게 오른 게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점차 1층에서 사라지는 금융사=하나은행은 최근 소공동 지점 등 두 곳의 영업점이 1층에서 2층으로 옮겼다. 월세가 올라 1층에 비해 40% 정도 싼 2층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일반 고객 수는 조금 줄 수 있겠지만 수익 대비 비용을 감안한다면 1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 "지난해부터 1층엔 자동화기기만 갖춰놓고 영업점은 2층 이상 고층으로 점차 이동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 역시 "주변 시세가 오른 데다 종부세까지 부과되면서 임대료 인상 폭이 예년에 비해 크게 올랐다"며 "PB나 기업금융 등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물론 일반 영업점도 이제는 임대료가 비싼 1층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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