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은서 뭔가 숨기고 있다”/금융계“진상 다알면서 은폐”의혹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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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조사과정서 “앞뒤 안맞는 해명” 드러나/본점측 주장 지점직원들 진술과 엇갈려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이희도씨 자살사건 파문이 사채시장과 금융권 전체로 확산되는 가운데 당사자인 상업은행측이 사건의 진상을 왜곡·축소 하려들어 혼란을 부추긴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상업은행측이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은폐하려는 인상이 짙다』며 『조속히 진상규명이 되지 않을 경우 금융가뿐 아니라 경제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같은 의심은 사건이후 은행측이 보여온 명쾌하지 못한 태도에서 비롯돼 관계기관의 조사과정에서 은행측 설명과는 다른 내용들이 속속 드러나며 증폭됐다.
상업은행측은 숨진 이씨가 자살직전 예금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1백억원의 CD(양도성 예금증서)를 사채시장에서 유통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롯데측에서 받은 약속어음 3백억원 유출사실외에 다른 사고는 없다』고 발뺌했다.
상업은행 박태만전무는 CD불법유통사실이 드러난 17일 낮 『자체조사결과 CD를 비롯한 어음·수표 등의 보관상태에 전혀 이상 없었다』고 밝혔으나 은행감독원에는 불법유통사실을 보고했다.
특히 금융당국의 조사결과 불법발행한 CD가 사채업자 김기덕씨를 통해 대신증권에 넘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대신측이 14일 CD의 진본여부를 상업은행 명동지점에 확인,CD담당자인 박병호과장대우의 확인 도장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나 상업은행측이 고의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에 앞서 이씨의 자살당일인 15일 김추규상업은행장은 『롯데에 거액의 대출을 해줬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해 이씨가 편법으로 롯데에 3백억원을 대출했음을 시사했다가 하루만에 『정상대출 이었다』고 번복했었다.
상업은행은 16일 『롯데에 대한 대출이 지점장 전결사항인 신탁대출로 이뤄졌기 때문에 사전에 은행장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날 경찰에 출두한 나찬영차장(44) 등 지점 직원들은 『지점장 전결사항이라도 액수가 커지면 본점에 보고해야 한다』며 『롯데에 대한 대출도 본점 신탁부의 사전승인을 받았다』고 본점측과 엇갈린 진술을 했다.
나씨 등의 경찰 출두과정에서도 상업은행측이 진상을 은폐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씨의 유서와 함께 발견된 약속어음에 결재도장을 찍었던 나씨 등은 이씨 자살직후 경찰이 은행측에 소환요청을 했음에도 모두 잠적,(경찰은 이들이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추정) 다음날인 16일 나란히 경찰에 출두해 『약속어음 유출과정은 모두 이 지점장 손에서 이뤄졌다』며 자신과 은행측의 관련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계 풍토상 같은 지점안에서 지점장이 수백억원대의 어음과 CD를 유용했는데 차장이나 담당과장 등이 눈치도 채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상업은행측은 또 이씨의 자살동기와 약속어음 대출과정 등을 16일 발표한다고 했다가 취소하기도 했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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