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학생 50명 첫 '한국어 백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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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北京) 시내 북서쪽에 있는 위옌(語言)대학 교학관 4층. '제1회 전(全) 중국 한국어 백일장 대회'에 참여한 톈진사범대학 3학년 정양(鄭楊.21)은 '소중한 인연'이란 주제어를 받자 주저없이 써내려 갔다. 정양은 중국 전역에서 선발된 한국어 전공 남녀 대학생 50명과 겨뤄 최고상인 금상을 차지했다. 그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인연을 묘사했다"며 "한국에 가보진 못했지만 도서관에서 매주 1권 정도 한국 수필과 소설을 읽는다"고 공부 비법을 소개했다.

성균관대가 주최한 한국어 백일장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최남단 광둥(廣東)성에서 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학생도, 최북단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온 학생도 있을 정도로 열기는 뜨거웠다.

성균관대 이명학 사범대학장은 "대학별로 자체 선발 과정까지 거친 우수한 학생들이 참석해 놀랐다"며 기뻐했다. 이 학장은 "이번 행사 준비과정에서 한국어과를 개설한 중국 대학이 총 56개이고, 학생 수는 5000명쯤 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회 참석자는 전원이 한족(漢族)이었다.

중국 대학에서 조선족은 한국어과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는 금.은.동상 입상자 3명에겐 성균관대로 유학 오면 2년간 학비를 면제해 주기로 약속했다.

◆"매주 한 권씩 한국 소설 읽어요"=백일장의 주제는 '소중한 인연'. 2시간 동안 1000자 이상을 쓰라는 조건이 붙었다. 채점을 하러 간 성균관대 교수들은 처음엔 글의 수준을 걱정했다. "한국 대학생들도 글쓰기가 안 되는데 중국 학생들이 얼마나…"하며 반신반의했다. 낮 12시, 중국 학생들이 제출한 원고지를 본 교수들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대부분 2000자 이상을 너끈히 썼다. 3000자를 넘긴 답안도 있었다. "한국 대학생들보다 필체도 깔끔하고 맞춤법.띄어쓰기도 더 나은 것 같다. 믿기 어렵다"(원만희 교수), "내용도 좋다. 한국 대학생들도 이렇게 쓰기 쉽지 않다"(박정하 교수).

은상 수상자 뤄위안(羅媛.22.여.광둥외어외무대 4년)은 "2002년 월드컵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린 방치하고 있다"=산둥성 옌타이(煙臺)시 루둥(魯東)대학 위샤오쥔(于曉軍.21.한국어학과 3)은 14일 오후 11시 베이징행 열차를 탔다. 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달 초 같은 과 동료 학생 300명이 겨룬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해 참가 자격을 얻었다. 15시간의 기차여행으로 녹초가 됐지만 그는 "한국에서 유학한 뒤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장래의 꿈을 말했다. 이처럼 대회에 참석한 중국 학생들의 '한국 사랑'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장후이(張褘.22.여.베이징 제2외대 3년)는 "부산 동아대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했다"며 "삼성이나 LG 같은 한국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헤이룽장성 정부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놓고 대회에 참석한 리정화(李政華.23.헤이룽장대 4년)는 "매일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한국 뉴스를 검색할 정도로 관심이 있다"며 웃었다. 루닝(魯寧.22.여.다롄외국어대 3년)은 "한국어는 배울수록 재미있다. 이달 말에 경희대에 교환학생으로 가는데 매우 설렌다"며 들떠 있었다. 위옌대 한국어과 안인환 교수는 "미국은 풀브라이트 장학금, 일본은 문부성 장학금을 통해 친미.친일 그룹을 만들어 낸다"며 "우리가 '한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한국말을 배우는 중국 학생들도 방치해 온 게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베이징=천인성 기자

◆위옌(語言)대학=중국어를 국제적으로 보급하고 외국인 유학생에게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중국 정부가 1962년 만들었다. 1만3000여 명의 재학생 중 8000여 명이 전 세계 120개국에서 온 유학생이다. 영어의 토플에 해당하는 중국어 시험 HSK를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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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
[現]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 학장
[現]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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