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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도 잠재요원 ‘모래알 정보’ 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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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05면

중국의 ‘마타하리’ 이중간첩 혐의로 기소된 전직 연방수사국(FBI) 요원 카트리나 룽(왼쪽에서 둘째)이 2005년 12월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룽은 20년간 FBI 동료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며 기밀을 중국에 넘긴 혐의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AP=본사특약

2003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한 저택. 암호명 ‘하녀(parlor maid)’로 20여 년간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정보원으로 활약한 카트리나 룽이 체포됐다. 그녀의 동료이자 20년간 사랑을 나눈 J. J 스미스와 함께였다. FBI는 그녀가 중국의 정보원, 이중간첩이라고 밝혔다. 그녀를 조사한 다른 남자 요원도 그녀와 연인관계였음이 드러나 FBI는 충격에 빠졌다. 이 사건은 ‘중국 위협론’이 몰아치던 미국 사회에 중국의 저인망ㆍ인해전술식 첩보전을 새삼 주목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저인망·인해전술 중국

미국 정보당국 당혹
“중국은 다르다.” 미국의 정보 전문가들은 중국의 첩보전 스타일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한다. 대표적 정보기관은 중국 국무원 산하 국가안전부(MSS). 그들의 독특한 정보원 충원과 운영 방식은 냉전 시절 소련 스타일에 익숙해진 미국의 정보당국을 당혹스럽게 했다. 전통적 비밀 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자국 유학생과 과학자들, 기업인들이 그들의 ‘잠재요원’이다. “해변의 특수한 모래를 가져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고 치자. 러시아라면 깊은 밤 잠수함으로 정예요원들을 침투시킨 뒤 양동이에 모래를 담아 오겠지만 중국은 자국인 500명을 해변으로 소풍을 보낸 뒤 작은 캔에 모래를 담아오게 할 것이다.” 1975년부터 3년 동안 중앙정보국(CIA) 중국지부장을, 1989년부터 2년 동안 주중 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의 분석이다. 국제안보 전문연구기관인 글로벌 시큐리티의 존 파이크 분석관도 “미국 내 70여개 사무실에서 일하는 1500명의 외교관들, 매년 미국으로 유학 오는 1만5000명의 학생과 1만여 명의 각종 사절들이 모두 잠재적 정보요원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문요원에 의한 정보 획득보다는 인해전술로 수만 개의 모래알 정보를 모은다는 것이다. 신분위장은 MSS 제2국에서 담당한다. 해외주재 언론 종사자 일부도 정보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MSS는 83년 6월 공공안전부 내 방첩단과 건국 초기부터 활동한 공산당의 중앙조사부 등을 합쳐 설립됐다. 80년대 초반 중국의 개혁ㆍ개방정책으로 국내외 인사들의 출입국이 폭증하면서 조직적 방첩 필요성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설립 2년 뒤인 85년 MSS 방첩국장 위창성이 계파 간 주도권 싸움 끝에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MSS의 미국 내 스파이 조직과 정보원 획득 방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그해를 ‘스파이의 해’로 표현했다. 래리 친 사건은 대표적이다. 그는 48년 상하이 미 총영사관에서 일할 때 중국 공산당 중앙조사부에 포섭된 스파이다. 81년 퇴임 시 CIA로부터 공로 메달을 받은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도 훈장을 받았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대중 관계 정상화’계획도 미리 중국에 전해줬다고 한다.

인민 사이버전 부대 창설
중국의 인해전술식 스파이전 대상은 주로 미국이다. 최근에는 일본을 상대로 첨단기술을 비롯한 산업정보와 주일미군 관련 정보 수집에도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005년 호주로 망명한 중국 외교관 천융린의 증언). 하지만 미국의 국립 과학연구소나 실리콘 밸리가 주요 타깃이라고 한다. 1997년에는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소형 핵탄두 폭발실험 정보 등을 중국에 제공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대만계 미국인 피터 리 사건이 일어났다.

99년에는 핵탄두 설계와 미사일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리원허가 체포되기도 했다. 당시 미 에너지부 정보국장으로 두 사건을 조사한 노틀러 트룰럭은 “중국 당국은 해외체류 자국 유학생이나 학자들에게 접근해 ‘미국은 너무 강하고 중국은 너무 가난하다. 조국을 도와야 한다. 특히 핵기술은 한참 뒤떨어져 있어 정보를 유출해도 미국엔 문제가 안 된다’고 설득한다”고 전했다.

유럽지역의 중국 경계감도 상당하다. 지난해 5월 벨기에에서는 북유럽 지역에 중국인 유학생 스파이 조직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모든 중국인은 의심해봐야 한다”는 서방 정보기관들의 이 같은 접근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미국 내 인권운동가들, 특히 중국계 미국인들은 인종차별주의에서 비롯된 또 다른 매카시즘이며, 중국 위협론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항변한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중국의 정보 수집도 사이버 무대로 옮아가고 있다. 미 국방전문지 디펜스 뉴스는 최근 중국이 6000명 수준의 ‘인민사이버전’부대를 구축, 인터넷 해킹을 통해 미국과 대만의 군사기밀을 훔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보안이 취약한 대만에 민감한 정보를 제공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미국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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