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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생각으로 풀어낸 철학의 개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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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외국 철학사전을 번안하거나 번역하기만 하던 시대를 벗어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말 철학사전'(지식산업사.전5권)을 최근 완간한 우리사상연구소 소장 이기상(60.외대 철학.사진) 교수의 소감이다. 2001년 첫 권이 나온 지 6년만의 완간이다. 이 소장은 "철학의 핵심 주제를 국내 학자들이 우리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정리한 첫 철학사전"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말 철학사전'은 일종의 철학 개념어 사전이다. '존재''세계''인식'등 60개 철학용어에 대한 장문의 설명을 6권에 담았다. 한 권에 12개씩 소개된다. 5권의 경우 '개념''객관성''고통''교육''사랑''성''세계''아름다움''이와 기''인식''철학''학문'에 대한 정리가 담겨있다.

"기존의 번역 사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0년은 우리 철학계도 '번역의 시대'였습니다. 서양을 배우는 과정이었죠. 이제는 우리 삶과 역사가 반영된 개념을 가지고 세상의 문제를 볼 때가 됐다고 봅니다."

이 사전의 특징을 묻자 이 교수는 "서양 철학 개념과 동아시아 전통적 사유를 접목해 설명한 점"이라고 답했다. 예컨대 '인간'을 설명할 때 서양 철학에선 '이성적 동물'이라는 이성 중심의 규정이 우세하다. 하지만 '우리말 철학사전'에선 '사이 있음'이란 설명을 추가한다.

"인간이란 하늘과 땅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음을 나타내려고 했지요. 인간을 '자연의 정복자'로만 보지 않고 '자연의 관리인'이란 시각도 추가했어요. 서양과 다른 동양의 그물망식 관계론적 사유의 특징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이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지만 우리 전통 철학에도 열린 자세를 보였다. 그는 "아직은 전반적으로 서양철학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지만, 이제 시작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사전을 내는 데 가장 어려웠던 일은 필진 구하기였다. "동서양 철학을 나름대로 소화하고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서양철학 개념은 비교적 정리가 잘되어 있는 반면, 우리의 문제의식과 전통 철학은 정리가 잘 돼 있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우리말 철학사전'을 만드는데 이 교수가 모델로 삼은 것은 1970년대 나온 독일의 '개념어 사전'이다. 독일 학계가 총동원돼 만든, 권당 1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독일의 학자들은 무슨 글을 쓰든 그 '개념사 사전'을 기본으로 참고합니다. 독일뿐 아니라 20세기 후반 많은 나라에서 '개념사 편찬'이 유행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미아(迷兒)가 되지 않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일종의 '문화사 정리'차원이었습니다."

'우리말 철학사전'의 편찬위원으로 박순영(연세대).백종현(서울대).박종대(서강대).신승환(가톨릭대).이승환(고려대).최봉영(항공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사전 제작에 쓰인 1억여원의 경비는 이 교수의 지인인 이민상(내과 전문의사)씨가 지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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