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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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 정계에 대한 한국의 로비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76년 10월25일부터 워싱턴 포스트지에 의해 파헤쳐지기 시작한 이른바 박동선사건이었다. 카터 행정부와 당시 미 의회를 구워삶기 위해 한국정부가 박씨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에게 1백만달러 가량의 뇌물공세를 폈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그때 미국 언론들은 한국의 로비를 가리켜 「솜씨가 거칠고 덜 세련되어 너무 함부로 돈을 뿌리고 다닌 표본」이라고 혹평했다. 어떤 신문은 「모든 로비가 돈으로만 성사될 수 있다면 누군들 로비를 못하겠는가. 한국은 돈이 로비의 모든 것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혹평했다.
세계 각국 로비이스트들의 각축장인 워싱턴 정계에서는 일찍부터 그 기술로 보건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로비는 가장 수준이 낮은 것으로,유대인의 로비는 가장 세련된 것으로 꼽았다. 아시아의 로비가 돈이 위주로 되어 있는 반면 유대인의 로비는 합법성과 명분이 전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돈을 많이 쓰기로는 희랍의 로비도 아시아의 로비와 다를바 없지만 그 기술로 볼때 아시아의 로비가 희랍의 로비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물론 로비를 하는데 있어서 돈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돈을 쓰는데 있어서 유대인들이 정치헌금·강연사례금·고문료 등 그야말로 「공인된 뇌물」공세를 펴는데 반해 아시아인들은 무조건의 현금공세를 편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 기자들은 그같은 로비행태를 가리켜 중간에서 잘라먹기 편리해 더욱 유행했을 것이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오직 현금만을 앞세운 한국의 로비술은 국내의 로비활동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국내에서의 로비는 그 자체가 뇌물공세로 인식되어 있다. 작년 2월의 수서사건 때도 그랬지만 최근 다시 「특혜로비」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건영사건도 그 로비에 얼마만큼의 자금이 투입됐고,누구의 손아귀에 얼마가 들어갔느냐 하는 것이 또 다른 차원에서의 관심거리다.
「로비만 잘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말은 곧 돈을 많이,집어넣을 곳에 정확하게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나 다름 없다. 이런 식의 로비만 번창한다면 「밝은 사회」는 요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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