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닉·웅장함 … 무대를 내 품 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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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으로 '바그너 전문가수' 사무엘 윤

높은 음까지 화려하게 소화하는 테너나 현란한 기교가 돋보이는 피아노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된 대상이다. 하지만 주된 대상이 아니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도 있다. 테너보다 더 큰 박수를 이끌어내는 베이스 바리톤, 놀라운 테크닉을 보여주는 트롬본 연주자를 소개한다.

대부분의 성악가는 화려하고 귀를 잡아끄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는 이탈리아풍의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을 꿈꾼다. 또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성악가들은 '피가로의 결혼''라보엠' 같은 대중적인 작품에 등장해 높은 음역을 소화해내는 테너가 대부분이다.

성악가 사무엘 윤(36.한국명 윤태현)씨도 그랬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후 오페라 가수를 꿈꾸며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을 떠난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벨칸토 오페라를 공부했다.

하지만 1999년 독일로 무대를 옮긴 후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장르가 화려한 테너가 아닌 웅장한 바리톤임을 깨달았다.

"언젠가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신들의 황혼'에서 번개의 신('돈노') 역을 맡아 연기를 하고 있었어요. 대본에 따라 무대 바닥에 엎드려있는 상태에서 함께 출연한 성악가의 노래를 들었는데 갑자기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때부터 바그너에 미쳤지요."

신과 인간에 대해 공부해야 들리기 시작하며 한 작품이 6시간 넘게 공연되기도 하는 바그너의 음악. 하루종일 바그너만 듣고 읽은 지 5년째인 지금, 그에겐 '바그너 전문가수'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테너에 비해 낮은 음역을 소화하지만 굵고 대포 같은 성량으로 열창하는 그는 바그너가 어울리는 '헬덴(영웅적) 바리톤'이다.

윤씨는 "바그너와 바리톤 모두 폭넓게 인기를 끄는 종목은 아니지만 청중들의 박수에는 또 다른 맛이 있다"고 말했다. 2003년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바그너 가수를 배출해내기로 유명한 바이로이트 축제에 그를 캐스팅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윤씨가 소속돼있는 쾰른 오페라 극장의 관객이 20% 늘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특별한 박수를 받는 그의 첫 내한 독창회는 16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둔한 악기' 트롬본으로 화려한 독주 린드베리

"쉽게 예를 들어 휴대전화의 넓이만큼을 움직이면 반음이 내려가거나 올라가요. '도'에서 '레'로 옮겨가려면 피아노 건반의 다섯 배 정도 폭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보면 돼요."

KBS교향악단의 트롬본 주자 이철웅(42)씨는 "트롬본 연주가 둔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여도 음높이를 옮길 수 있는 바이올린.피아노와는 달리 트롬본으로는 빠른 악구를 연주하기가 힘들다. 크고 웅장한 악기를 다룰만한 긴 호흡도 필요하다.

이처럼 독주 악기로 적합하지 않은 특성 때문에 트롬본 독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에서 열리는 트롬본 독주회는 한 해 2~3회 정도다. 오케스트라에서도 화려한 연주보다는 저음부를 받쳐주는 악기로 인식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트롬본으로 화려한 무대를 꾸미는 연주자도 있다. 크리스티안 린드베리(49.스웨덴.사진(上))다. 린드베리는 영화 '샤인'(1996)에 나와 피아노곡으로 유명해진 '왕벌의 비행'(림스키 코르사코프)를 완벽하게 연주해 낸다. 음정만 제대로 맞추기도 힘든 악기로 다채로운 감정까지 표현해 내는 그를 두고 이씨는 "트롬본 전공자들이 최고로 치는 연주자"라고 극찬했다.

린드베리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트롬본 솔로 연주를 두고 '교회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부적절하다'는 비난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20여년 전 오케스트라 단원직을 그만둔 그는 이런 편견과 맞서 싸우며 트롬본을 화려한 독주 악기로 발전시켰다.

린드베리는 이후 "처음에는 비웃었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연주를 방해할 정도로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50장이 넘는 CD를 내놨고 현대 작곡가들로부터 80여 개의 곡을 헌정 받아 초연했다. 19일 오후 8시 내한 독주회에서 '주정뱅이의 딸꾹질 정도를 표현하는 악기'였던 트롬본을 화려하게 변신시킨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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