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증시 되돌아 보니] 주가, 510에서 800線까지…외국인의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체감경기가 유난히 나빴던 올해 증시의 운명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손안에 있었다. 연초부터 금융시장을 흔드는 대내외 사건들이 잇따르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연중 줄기차게 주식을 팔았지만 외국인들은 매수에 나서며 종합주가지수를 510선에서 800선 전후까지 끌어올렸다.

그 결과 국내 증시의 안방을 외국인들에게 내주게 됐다. 삼성전자 등 알짜배기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영향력이 더욱 늘어났고 거래소시장 시가총액의 40.4%가 외국인들의 손안에 들어갔다.

채권시장은 연중 불안한 장세를 나타냈다. 카드채에 대한 불안감이 채권시장을 우량채권과 불량채권으로 양극화시켜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켰다. 또 4분기부터는 내년 이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금리가 상승세(채권 가격은 하락)로 돌아서면서 수익률이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펀드시장은 주식형이 뜨고, 채권형은 울상을 짓는 결과를 나타냈다.

◆외국인이 주도한 주식시장=지난 3월 17일 종합주가지수가 515.24까지 하락하자 국내 투자자들은 증시를 본격적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5월 이후 8개월째 올라 연초보다 29%, 3월 저점보다는 55% 가량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상승 동력은 외국인들의 '바이 아시아(Buy Asia)'였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해소 이후 대중국 수출이 늘면서 외국 자본이 일본.대만.한국으로 밀려들었고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도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무려 13조8천3백75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외국인 보유 종목의 시가총액이 지난해 말 93조1천억원에서 지난 24일 1백40조9천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올 한 해 평가차익도 34조원에 이르고 있다.

외국인들은 안개 속 장세에서도 주도주를 한발 앞서 찾아낸 것으로 평가된다. 5월부터 미국의 경기회복에 민감한 전기전자주를 사들인 데 이어 가을에는 조선해운.석유화학 등 중국 경기에 민감한 업종에 손을 댔고, 4분기 들어선 유통.금융 등 내수회복 수혜주로 매기를 확산시켰다.

그러나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90%에 달하는 코스닥시장은 거래소와 대조를 이뤘다. 코스닥지수는 지난 24일 43.09로 지난해 말의 44.36보다 되레 하락했다.

◆부침 심했던 채권시장=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에 따라 연초까지는 채권가격 상승(금리는 하락)이 지속됐다. 그러나 3월 SK글로벌과 카드채 사태가 불거지면서 채권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초 5.07%였던 지표금리(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부각되면서 6월 18일 3.95%까지 떨어졌다. 장기금리가 당시 4%였던 하루짜리 콜금리 밑으로 떨어지는 이변을 낳았다.

반면 투기등급(BBB-) 이하 회사채 수익률은 매수세가 실종되며 10% 이상으로 치솟기도 했다.

이 여파로 올 한 해 전체 채권 거래대금 2천3백52조2천억원 중 국채가 9백52조6천억원(40.5%)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안증권이 8백35조1천억원(35.5%)을 차지했다. 반면 회사채의 거래대금은 1백55조5천억원으로 거래대금 비중이 지난해(10.4%)보다 크게 떨어진 6.6%에 그쳤다.

4분기 들어서는 LG카드 문제가 다시 불거진 데다 경기회복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금리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대우증권 김범중 연구원은 "내년에도 금리 상승세가 이어져 3분기께 5.7% 선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식형 펀드 고공 비행=올해 주가가 많이 상승함에 따라 주식편입 비율이 70%를 넘는 성장형 펀드가 높은 수익을 올렸다. 반면 채권으로만 구성된 채권형 펀드는 수익률이 저조했다.

펀드 평가회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성장형 펀드의 연초대비 수익률은 평균 31.91%에 달했다. 올해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는 삼성투신의 '드래곤승천주식3-24'로 지난 23일 현재 53.4%의 수익률을 거뒀다. 미래에셋자산의 '미래인디펜던스주식형1'(50.95%), '미래디스커버리펀드'(50%) 등이 뒤를 이었다.

안정성장형 펀드(주식편입비율 40~70%)와 안정형 펀드(40% 미만)의 평균 수익률도 각각 17.53%와 10.57%에 달했다. 그러나 채권형 펀드는 연말 들어 금리가 상승한 탓에 연초대비 평균 수익률이 3.78%에 불과해 은행권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4%대)에도 못 미쳤다.

김동호.손해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