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경기가 유난히 나빴던 올해 증시의 운명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손안에 있었다. 연초부터 금융시장을 흔드는 대내외 사건들이 잇따르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연중 줄기차게 주식을 팔았지만 외국인들은 매수에 나서며 종합주가지수를 510선에서 800선 전후까지 끌어올렸다.
그 결과 국내 증시의 안방을 외국인들에게 내주게 됐다. 삼성전자 등 알짜배기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영향력이 더욱 늘어났고 거래소시장 시가총액의 40.4%가 외국인들의 손안에 들어갔다.
채권시장은 연중 불안한 장세를 나타냈다. 카드채에 대한 불안감이 채권시장을 우량채권과 불량채권으로 양극화시켜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켰다. 또 4분기부터는 내년 이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금리가 상승세(채권 가격은 하락)로 돌아서면서 수익률이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펀드시장은 주식형이 뜨고, 채권형은 울상을 짓는 결과를 나타냈다.
◆외국인이 주도한 주식시장=지난 3월 17일 종합주가지수가 515.24까지 하락하자 국내 투자자들은 증시를 본격적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5월 이후 8개월째 올라 연초보다 29%, 3월 저점보다는 55% 가량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상승 동력은 외국인들의 '바이 아시아(Buy Asia)'였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해소 이후 대중국 수출이 늘면서 외국 자본이 일본.대만.한국으로 밀려들었고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도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무려 13조8천3백75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외국인 보유 종목의 시가총액이 지난해 말 93조1천억원에서 지난 24일 1백40조9천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올 한 해 평가차익도 34조원에 이르고 있다.
외국인들은 안개 속 장세에서도 주도주를 한발 앞서 찾아낸 것으로 평가된다. 5월부터 미국의 경기회복에 민감한 전기전자주를 사들인 데 이어 가을에는 조선해운.석유화학 등 중국 경기에 민감한 업종에 손을 댔고, 4분기 들어선 유통.금융 등 내수회복 수혜주로 매기를 확산시켰다.
그러나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90%에 달하는 코스닥시장은 거래소와 대조를 이뤘다. 코스닥지수는 지난 24일 43.09로 지난해 말의 44.36보다 되레 하락했다.
◆부침 심했던 채권시장=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에 따라 연초까지는 채권가격 상승(금리는 하락)이 지속됐다. 그러나 3월 SK글로벌과 카드채 사태가 불거지면서 채권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초 5.07%였던 지표금리(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부각되면서 6월 18일 3.95%까지 떨어졌다. 장기금리가 당시 4%였던 하루짜리 콜금리 밑으로 떨어지는 이변을 낳았다.
반면 투기등급(BBB-) 이하 회사채 수익률은 매수세가 실종되며 10% 이상으로 치솟기도 했다.
이 여파로 올 한 해 전체 채권 거래대금 2천3백52조2천억원 중 국채가 9백52조6천억원(40.5%)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안증권이 8백35조1천억원(35.5%)을 차지했다. 반면 회사채의 거래대금은 1백55조5천억원으로 거래대금 비중이 지난해(10.4%)보다 크게 떨어진 6.6%에 그쳤다.
4분기 들어서는 LG카드 문제가 다시 불거진 데다 경기회복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금리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대우증권 김범중 연구원은 "내년에도 금리 상승세가 이어져 3분기께 5.7% 선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식형 펀드 고공 비행=올해 주가가 많이 상승함에 따라 주식편입 비율이 70%를 넘는 성장형 펀드가 높은 수익을 올렸다. 반면 채권으로만 구성된 채권형 펀드는 수익률이 저조했다.
펀드 평가회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성장형 펀드의 연초대비 수익률은 평균 31.91%에 달했다. 올해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는 삼성투신의 '드래곤승천주식3-24'로 지난 23일 현재 53.4%의 수익률을 거뒀다. 미래에셋자산의 '미래인디펜던스주식형1'(50.95%), '미래디스커버리펀드'(50%) 등이 뒤를 이었다.
안정성장형 펀드(주식편입비율 40~70%)와 안정형 펀드(40% 미만)의 평균 수익률도 각각 17.53%와 10.57%에 달했다. 그러나 채권형 펀드는 연말 들어 금리가 상승한 탓에 연초대비 평균 수익률이 3.78%에 불과해 은행권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4%대)에도 못 미쳤다.
김동호.손해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