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대규모 7조원 M&A, 론스타 외환은행 재매각 전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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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의 부회장 겸 CEO인 잭슨 타이(56.載國良)는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한국으로 날아온 그는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들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론스타 측으로부터 이날까지 외환은행 인수 계약 체결 여부를 알려달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키에 신중한 인상의 그는 한화로 7조 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기 전 금감위의 승인 여부부터 알고 싶어했다. 지난해 금감위 실무자들은 DBS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DBS는 국민은행과 경합을 벌였던 외환은행 인수 협상을 한때 포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론스타는 국민은행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그 후 줄곧 외환은행을 인수할 의향이 있는 5~6개의 금융기관과 비공개 재매각 협상을 벌여왔다. 그 가운데서도 싱가포르계 금융기관인 DBS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실제로 론스타 측은 이들과 연초에 매각 가격과 조건에 잠정 합의한 후 양해 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각서 내용은 DBS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중 51% 이상을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하고, 나머지를 국내외 컨소시엄에게 넘기는 방안이었다. 재매각 협상에 관여해온 한 관계자는 "DBS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의 구성과 관련해서는 카타르가 확정됐고, 한국 측 파트너로는 농협에 이어 군인공제회가 협상에 참여해왔다"고 밝혔다.

DBS가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오른 결정적인 이유는, 외환은행 임직원들이 새 주인으로 가장 반기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위원장 김지성)은 지난해 국민은행과 경합할 당시나 최근의 재매각 협상 과정에서 한결같이 DBS를 지지해왔다. DBS가 유독 외환은행의 독자 생존과 직원의 고용 보장, 그리고 외환은행의 장기 발전계획 제시에 가장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DBS는 론스타와의 협상과는 별도로 외환은행 직원 대표들과도 비공개 협상을 벌여왔다.

론스타로서도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인수 후보들도 있었지만 직원들의 지지를 얻는 DBS를 선호했다. 추후 비공개 매각 협상이 불러일으킬 논란을 감안하면 직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더욱이 DBS는 사모펀드인 론스타와는 다른 금융자본이었고, 이들의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 론스타가 우리나라에서 돈만 벌고 튄다는 이른바 '먹튀' 논란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5개월여간 끌어온 론스타와 DBS 간의 비공개 협상에서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논란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다. 감사원은 3월 인수 과정의 총체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검찰에서도 론스타코리아의 유회원 대표를 외환카드 주가 조작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해 1심이 진행 중이다. 법원 판결에 따라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체가 백지화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재매각 협상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론스타 측은 그럴 가능성이 작다고 주장한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직권 취소하라는 감사원의 요구를 결국 금감위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재매각 협상을 서둘러온 론스타로서는 대법원까지 가야 할 법원 판결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DBS도 재매각과 법원 판결을 분리하자는 론스타의 주장에 동의했다.

남은 문제는 금감위의 승인이다. 지난해 금감위 실무자들이 DBS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은 싱가포르의 국영 투자기관인 테마섹이 사실상 이 은행을 지배하고 있고, 금융 주력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국내 금융기관인 국민은행을 밀어주기 위한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런 판단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DBS측으로서는 이런 판단을 막기 위해 DBS와 테마섹의 겸직 이사를 해촉하고, 싱가포르 금융감독 당국인 MAS의 의견도 계약 체결과 동시에 할 승인 신청서에 첨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5일 국내에 체류 중이던 잭슨 타이는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재매각 계약 이후에도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는 사안에 대해,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는 금감위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론스타는 계속해서 승인 신청에 따른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계약을 체결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시간을 더 달라는 그의 요청에 대해 돌아온 것은 론스타 측의 공식 협상 중단 선언이었다.

3일 후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DBS와의 협상 중단을 공식화했다. 국내 언론들은 법원 판결 전 재매각 계획에 대해 여론 떠보기라는 분석을 내놨지만, 그보다는 사실상 DBS를 향한 최후 통첩의 성격이 강했다. 이 인터뷰에서는 DBS와의 협상은 중단됐지만 다른 인수 후보들은 건재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론스타와 DBS의 외환은행 재매각 협상은 결렬됐다고 봐야 할까. 협상 관계자들은 아직 극적인 타결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외환은행 직원들이 DBS로의 매각을 원하기 때문이다. 론스타로서도 협상 타결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금융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 딜은 이제 종착점을 향해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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