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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대도시 명성 되찾자"|황포 강변 개발 구슬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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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고등화인」. 타지역과는 수준이 다른 중국인 가운데 최고라는 뜻이다. 바로 상해인들의 자부심이 담겨 있는 말이다.
상해인들에게 상해는 그냥 상해가 아니다. 「대상해」다. 그래야 적성이 풀린다.
중국 최고의 공업도시, 최대번화가 남경로가 있고, 로킷·선박에서 과자류까지 「상해제」가 전국소비물자의 40%를 차지한다.
중국전체 수출입 물량의 30%를 감당하는 상해는 세계 10대 항이기도 하다. 게다가 왕년의 동아시아 최대도시였던 관록.
그래서 내지 사람들은 상해에 한번 가는 것을 해외나들이와 동격으로 생각할 만큼 쳐주는 곳이 바로 상해다.

<시민들 자부심 강해>
그러나 최근 어느 날 아침, 상해인들이 눈을 떴을 때 자신들이 우물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뒤늦게 나마 사회주의 중국 안에서조차 상당한 영역에서 제1의 자리를 넘겨준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대만·싱가포르·홍콩이, 안으로는 광동·심천이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미로처럼 좁디좁은 골목, 서로 코를 맞댄 누추한 창문들, 노소3대가 한지붕 아래 동거하는 구차한 살림살이…. 상해인들이 이런 것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은 불과 2∼3년전 일이다 .
황포강 서안으로 펼쳐진 상해의 기존시가지(포서)는 국제도시로는 어울리지 않는 무계획과 개발부재로 이미 포화상태였다.
상해시 정부는 이에 따라 「포서개조, 포동개발」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효과를 보기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 중심부는 출퇴근 시간대는 차량이 서로 엉켜 오도가도 못하는 사태가 매일같이 되풀이된다. 이 사이로 약삭빠른 자들은 오토바이를 장만하여 「택시」영업을 하기도 한다.
러시아워의 대중교통수단 상황을 조사한 한 통계자료는 시내버스내 1평방m당 13명 꼴로 승객들이 콩나무 시루를 이루고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동안 국가재정의 16∼20%를 감당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것은 생활이 아니다.』
상해지역은 그만큼 중국전체를 위해 자체지역 발전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 상해인은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와 반대로 광동성은 중앙정부의 막대한 지원아래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럼에도 이윤을 중앙정부에 환원하기를 거부하고 중앙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상해인들은 호의호식하는 광동인들이 「매국노들」이라고 울분을 터뜨린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국가경제를 위해 기여하고서도 자체발전은 뒤처져 있는 상해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됨직도 하다.
상해에 본격적인 개발이 착수된 것은 90년5월, 이른바 포동 프로젝트가 승인되면서부터다. 황포강 동쪽 3백50평방m의 광활한 부지에다 오는 2000년까지 5백억위안(한화 약7조5천억원)을 투자, 금융· 무역·수출가공·자유무역 중심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포서의 침대 하나가 포동의 방 한 칸보다 낫다』면서 성내인 포서를 고집하던 시민들이 변두리인 포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남포대교 완공 등으로 왕래가 편리해지면서 한때 서울의 강남바람처럼 상해에 「포동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6만여명이 옮겨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북경당국이 포동 프로젝트를 승인한 데는 89년 천안문사태에 따른 경제적 난관을 벗어나기 위한 것과 광주·심천의 개혁·개방 실험이 성공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중국경제의 심장부인 상해는 실험대상이 될 수 없는 국가경제의 사활이 걸린 곳이다. 그러나 광동과 같은 변방이 국가경제의 주도권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중앙정부의 판단이다.

<극심한 교통체증>
이것이 비록 상해가 경제개발에 한걸음 늦게 뛰어들었지만 장기적으로 광동세를 누르고 중국경제의 견인차로 재도약할 것이라는 분석의 배경이다.
상해의 5성급 호텔은 고층으로 갈수록 옆방의 코고는 소리가 잘 들린다는 얘기가 있다. 천안문사태직후 외국 합작선이 공사도중 일방적으로 철수하면서 나머지 공사를 중국인들이 맡아 빚어진 부실의 결과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수준과 현대서구의 수준이 한 호텔 안에 공존하면서 그 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상해 자체 힘만으로는 계획경제의 낡은 껍질을 깨고 효율성 있는 체제를 새롭게 수립하는 것이 지난하다는 얘기다.
흔히 「선천성 경영결핍증」으로 불리는 사회주의 관리체제의 문제점은 쇠의 임금(고정임금)·철의자(고정직위)·쇠밥그릇(평생고용)의 이른바 3철로 요약된다.
중국의 산업골간인 중대형 국영기업체들의 30% 이상이 적자인 이유가 바로 3철에 있다. 『모두의 것은 누구 것도 아니다』고 한 중국인이 자조하듯 무책임과 무사안일이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쇠방그릇, 그것도 40여년이나 녹슨 쇠그릇을 깬다는 것이 쉬운 일일 수 없는 것이다. 상해시 예원로에 위치한 녹파낭은 종업원 2백여명의 국영식당 종업원은 모두공무원이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이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몰유(없다)』 여자종업원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1시30분부터 휴식이므로 새로 만들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멀건히 서 있는 손님을 앞에 두고 가운을 입은「주방공무원들」이 객실을 차지하고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사업은 번창한다. 상해를 찾는 외지인이 많은데다 아직 개체구(개인영업) 가 그만한 규모의 식당을 경영할 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도 한가지 이유다.
고객은 주로 공비를 사용하는 단체공무원들. 저쪽이 방문하면 이쪽이 융숭하게 대접하고 주객이 바뀌면 또 이에 못지 않고 하여 주문되는 요리가 보통 20여종이 넘는다.
객실 하나에 1천위안(약15만원)이 넘게 나오는 음식 경비의 낭비는 상식으로 이해가 안된다.
상해의 국영기업들은 지금「외자기업 경영방식」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런 한편으로 「완벽한 낭비구조」라 할 수 있는 「국영음식점」이 성업중인 것은 그만큼 상해지역이 뒤져있는 증거다.
상해시는 지난해부터 기업이 이익을 내면 국가와 반분하는 등 개혁이 가속되고 있다.
상해의 중요 국영기업체들이 독립채산제를 수립하여 사실상 자본주의 원리인 외자기업 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변모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윤이란 게 무엇인가,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정부가 할당한 목표를 기업이 달성하는 게 아닌가.』
한 강연석상에서 나온 젊은 중국 경영인의 질문이지만, 계획경제에 길들여져 온 중국기업인에게 이윤은 아직 모호한 개념이다.
한 전문가는 시장경제가 우세한 남방, 계획경제가 강한 북방의 중간지대인 상해를 중심으로 지금 중국은 천하의 대세를 가름하는 「계획대 시장」의 대결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개혁항의 파업도>
지난해 9월 외자업체 경영기법을 도입한 상해의 봉초기계창은 성공사례로 꼽힌다.
「전원노동합동제」근무조건과 작업내용을 계약으로 정하고 주식제도 등과 함께 이익은 복지향상으로 들려졌다.
간부도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감봉이나 전직조치를 내린다. 아무리 태만해도 다같이 월급이 나오는 쇠방그릇은 이제 끝장이다.
종업원 2천여명인 이 기업체는 지난해 전년대비 약3배의 순익을 올렸다.
상해의 2백50여개 중·대형 국영기업체들도 모두 이와 비슷한 개혁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상해시의 올 상반기 국민총생산은 4백80억위안, 20여년만의 대기록인 14%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혁에 문제가 없지 않다. 3철에 길들여진 일부 근로자들이 국영기업체들의 개혁에 항의, 파업을 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한다. 당 우위가 여전해 정실인사가 아직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상해에 개혁의 불길이 댕겨진 것은 중국의 개방·개혁이 이미 「되돌아 갈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한 것이다. 중국경제의 중심이며 장강을 따라 역사적으로 천하의 향방을 가름해왔던 상해가 중원에로 개혁의 불길을 확산시키기 위해 힘차게 풀무질하고 있는 것이다.<글=전택원 특파원 사진="신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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