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러시아 경제 어떻게 봐야 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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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20면

잭 웰치(72·사진 오른쪽)는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세계 최대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를 20년간 맡았다. 웰치의 아내인 수지 웰치(48·왼쪽)는 세계적 학술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편집장을 지냈다.

Q: 요즘 러시아가 화제입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와 논란 많은 정치가 모두 뜨거운 이슈입니다. 이런 러시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핀란드 헬싱키 단 슈타인보크가)

“속 들여다보면 에너지 빼고는 불안”

A: 얼마 전 우리 부부는 러시아의 억만장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금 러시아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더군요.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아버지 레닌 묘를 등지고 모스크바의 붉은광장 한 가운데에 서서 오늘의 러시아를 음미해봐야 합니다.

한때 사람들이 식량배급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섰던 곳에는 이제 명품을 사기 위해 늘어선 인파가 보일 것입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호텔 건물과 쇼윈도에 전시된 세계적인 명차(영국 벤틀리와 이탈리아 람보르기니)도 눈에 들어옵니다. 이를 보고 당신은 개혁ㆍ개방 이후 요동치고 삐거덕거렸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것입니다. 심지어 병든 러시아가 수퍼파워로 부활했다고 단언할 수도 있겠지요. 러시아가 개혁ㆍ개방을 추진한 16년이라는 세월이 그런 탈바꿈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엄청난 석유자원 덕분이라고도 하더군요. 다시 국가적 자부심을 갖게 된 러시아인들도 모스크바의 화려한 모습에 기뻐하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네온사인만큼 화려하지 않습니다. 흐린 하늘 같다고나 할까요. 앞서 말한 억만장자의 호언장담이 귓전을 떠나기도 전에 우리는 한 정보통신 기업인한테서 러시아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부 관료가 주기적으로 불러 인사 압력을 넣는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내려보낸 인사는 하나같이 무능하지만 좋은 ‘빽(배후세력)’을 가지고 있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게)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 기업인은 털어놓았습니다.

러시아는 수수께끼입니다. 대단한 경쟁력으로 글로벌 마켓에 새로 진입하고 있고 앞날도 창창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부에 있습니다. 이 내부 문제가 언젠가는 말썽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예상입니다.

요즘 러시아인들은 자신감이 가득합니다. 오일 머니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그들은 어려웠던 과거 10여 년을 하루빨리 잊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예컨대 호텔 직원, 거리 상인, 택시운전사의 태도가 당당해졌고 젊은이들은 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있습니다. 푸틴의 최근 지지율은 85%에 이릅니다. 심지어 자부심이 이제는 오만함으로 바뀌고 있다고 동ㆍ북유럽 비즈니스맨들은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인의 자부심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리더를 과학적으로 길러내기 위한 경영대학원이 탄생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 부부는 러시아의 경영관행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신흥부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차세대 비즈니스 리더를 육성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벤처자본가로 구실하면서 도전의식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창업을 돕기도 합니다. 제가 벤처기업인 250명을 상대로 강연하면서 창업자본 조달에 애먹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을 때 손을 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강연장에서 러시아의 또 다른 실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벤처기업인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이 자기 나라의 전체 벤처기업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벤처기업인층이 너무 얇다는 뜻입니다. 사실이 이렇다 보니 러시아 기업인들은 안전성과 수익성이 높은 에너지ㆍ원자재 업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산업구조의 다변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기업의 수익이 너무 좋은 나머지 자본과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유능한 인재까지 집중되고 있습니다.

또 정부ㆍ관료의 부패와 노동자의 의욕상실도 문제입니다. 부패는 러시아의 고질적인 병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개선되지 않고 더 심해지는 양상입니다. 성공기회를 재빨리 포착해 활용하려는 의욕과 도전정신으로 가득한 젊은이는 많지 않습니다. “러시아 젊은이들은 폼 나는 차 한 대 외에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는 현지 비즈니스맨의 말이 그 실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또 다른 문제는 러시아의 정치입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최근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푸틴이 문제입니다. 미국ㆍ영국ㆍ독일ㆍ폴란드 등이 푸틴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익을 위해 강력히 대처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 투자한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푸틴의 반대파 탄압은 정치 리스크를 하나 더 늘려놓은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석유회사들이 철수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투자자들은 금쪽같은 자본을 투자하려고 하면서 러시아 정치문제를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수수께끼 같은 나라입니다.
앞으로 러시아가 이런 문제와 걸림돌을 슬기롭게 이겨낼까요? 아니면 이겨내지 못할까요?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하게 말해줄 수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러시아는 전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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