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기는 범죄가 아닌 예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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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12면

영화 ‘오션스 13’.

영화 역사상 ‘오션스(Ocean’s)’ 시리즈는 아마도 두 가지 점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하나는 등장하는 스타의 수가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전례 없이 성공적인 ‘케이퍼 무비(Caper Movie)’ 시리즈라는 것.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한 최신작 ‘오션스13’에도 어김없이 브래드 피트를 비롯해 맷 데이먼ㆍ돈 치들ㆍ칼 라이너 등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의 멋쟁이 친구들이 떼거리로 나온다. 이들은 친구 루벤의 돈을 사취한 악당 호텔주(알 파치노)를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철저히 응징한다. 라스베이거스 최고급 카지노가 문을 여는 날, 5억 달러의 대박이 터지도록 조작하고 최고급 다이아몬드 목걸이 세트를 통째로 훔친다. 환락의 도시에서 스타들이 펼치는 활약과 유머를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션스13’을 더 이상 ‘케이퍼 무비’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정적인 ‘한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케이퍼 무비’ 특유의 서스펜스를 고조시키지도 못하고, 클라이맥스의 카타르시스도 기대에 못 미친다.

일생일대의 ‘한탕’을 위하여
‘케이퍼 무비’는 범죄를 그리는 영화다.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라고도 불리는 이 장르는 흔히 범죄 스릴러로 번역되지만, 아마도 ‘한탕 영화’가 가장 적절한 역어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이 금고 열기나 폭파, 해킹 등 각 분야의 프로인 조연들과 환상의 팀워크를 이뤄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를 성공시킨다는 스토리가 전형적인 예다.

범죄의 목적은 거금이나 귀중품을 터는 것이다. 이 장르의 고전인 ‘아스팔트 정글’(존 휴스턴ㆍ1950)이나 ‘리피피’(줄스 다신ㆍ1955)에서부터 확립돼온 장르의 규칙이다. 범죄자 일당이 노리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욕망의 대상이어야 하니, 인명이거나 기밀문서가 아니라 돈일 수밖에 없다. 특수금고 속에 잠자고 있는. 단번에 인생을 바꿔놓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돈 말이다. 다이아몬드나 황금, 고가의 그림은 돈의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또 차근차근 돈을 모으는 것으로는 결코 욕망의 환상을 충족시킬 수 없으니,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개입 없이 욕망의 대상을 ‘탈취’하는 것이 ‘케이퍼 무비’의 제1원칙인 것이다.

일생일대의 한탕을 ‘땡기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을까.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기상천외한 계획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실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잔악무도한 갱 두목의 목돈을 가로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마 도박에 열광하는 그의 약점을 노려 가짜 경마중계소를 차려 사기를 쳐라.

이것이 ‘스팅’(조지 로이 힐ㆍ1973)이 보여주는 해법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를 성사시키는 것이 ‘케이퍼 무비’의 제2 원칙인 것이다. ‘케이퍼 무비’의 쾌감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무엇을 터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터는가’가 문제다. 관객의 쾌감을 극대화하려면, 감쪽같고 기발하고 예술적인 방법으로 털어야 한다. 이러한 ‘범죄의 미학화’는 관객을 두뇌게임으로 끌어들여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한국형 ‘케이퍼 무비’ 등장
‘케이퍼 무비’가 그리는 세계는 일탈의 세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악으로 규정돼 있는 사유재산권 침해가 찬양되는 도착된 세계다. 최첨단 방범장치를 조롱하고, 난공불락의 이스라엘제 특수금고를 여는 것은 기존 체제와 주류 시스템을 비웃고 초월하는 즐거움을 준다. 보통 사람에게 불가능한 욕망의 실현을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구축한다.

각기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4개의 열쇠를 복제해 달리는 열차의 금괴를 빼돌리고(마이클 크라이튼이 자신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대열차강도’ㆍ1979), 교통신호시스템을 해킹해 교통정체를 일으키고 도로 밑을 폭파해 금 수송 트럭을 통째로 낚아채는 것(게이 그레이의 ‘이탈리아 잡’ㆍ2003)이 가능한 세계가 ‘케이퍼 무비’의 세계다. 이들 영화는 범죄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킴으로써 완벽한 통제의 환상을 제공한다.

‘케이퍼 무비’에 특징적인 돈에 대한 물신숭배적 집착은 흔히 영화 후반부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탐욕으로 팀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타나거나, 범죄가 탄로나 허망한 결말에 이르는 영화도 적지 않다.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욕망의 법칙을 드러내는 것이다. 치밀한 사전계획으로 경마장 판돈을 털었으나 일당 중 한 명의 말실수로 파탄에 이르는 ‘킬링’(스탠리 큐브릭ㆍ1956)이 고전적인 예다.

그동안 한국 영화는 ‘케이퍼 무비’와 별 인연이 없었다. 우리 관객들이 밀실에서 장르적 쾌감에 몰입하기엔 바깥 세상이 너무 흉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 어깨에 힘을 뺀 채 장르영화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감독들이 등장하면서 범죄의 통쾌함을 선사하고 있다. 동시에 한 금융기관 금고를 노리던 3개 팀이 조우하는 코믹 범죄극 ‘자카르타’(정초신ㆍ2000), 전도연이 투견장의 판돈을 들고 튀는 가수지망생으로 열연한 ‘피도 눈물도 없이’(류승완ㆍ2002), 한국은행 거액 사기가 실은 복수의 전주곡이었던 ‘범죄의 재구성’(최동훈2004) 등이 그런 영화다.
‘케이퍼 무비’의 세계는 ‘범죄의 재구성’에서 김 선생(백윤식 분)이 갈파한 한마디로 요약된다. “큰 사기는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이 된다. 그래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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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한주씨는 일간지 기자를 거쳐 미국 남가주대학(USC)에서 영화학을 공부한 뒤 영화평론가로 일하며 동아방송예술대 초빙교수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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