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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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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이 기침 한 번만 해도 선관위는 전체가 들썩인다. 서로 피곤하게 왜 이러시나."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선관위의 결정을 정면 반박한 데 대해서다. 선관위는 일단 "노 대통령의 발언이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살펴보고 판단할 일"이라며 공식 대응을 자제했다. 하지만 선관위 내부에선 "대통령이 만 하루도 안 돼 선관위 결정을 무시한 발언을 쏟아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2004년 선거법 제9조 때문에 탄핵까지 당했는데 위헌 소지가 있다면 그때부터 개정 노력을 했어야지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 그 얘기를 끄집어내는지 모르겠다"며 "선거법 제9조는 탄핵심판 사건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판례까지 형성돼 있는 사안"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관계자는 또 이날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주자를 다시 비판한 데 대해 "만일 다시 고발이 접수되면 7일 결정(공무원의 중립 의무 위반)과 비슷한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본다"면서 "이 같은 발언이 반복될 경우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조항을 계속해 위반할 경우 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돼 처벌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정치활동과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분별조차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가 대통령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선관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치활동의 범주와 선거 중립 의무는 전혀 별개 문제"라며 "정치활동이란 큰 범주 안에 선거에 관한 부분에 한정해서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지 선거법 제9조가 정치활동 전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양금석 공보관도 "참여정부 평가포럼(참평포럼) 특강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과는 차별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양 공보관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단순히 정책에 관한 의사표시라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로 봐야 할지 더 꼼꼼히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날 선관위가 '(참평포럼의 노 대통령 발언이) 특정 정당의 집권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했다'고 판단한 것에 비해 발언 수위가 높지 않다는 설명이다.

양 공보관은 "언론 보도만 봐선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면밀히 살펴 조사할 만한 사안인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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