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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옵티시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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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쇼'라는 간판이다. 한 이동통신회사의 3세대 서비스 이름이다. TV 광고는 융단폭격 수준이다. 여기저기서 '쇼를 하라'는 슬로건이 들려온다. 그저 광고 문구가 아니라 야심 찬 선언문이나 주문처럼 들린다.

'쇼한다' '정치쇼'에서 같은 '쇼'의 부정적 어감도 덜어내고 있다. 과시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표현에 적극적인 젊은 세대이니 '쇼를 하라'는 권유가 그런대로 먹힌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 키워드가 될 만하다.

'쇼'의 핵심 서비스는 화상전화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전화로 연결될 뿐 아니라 내 모습까지 공개 전달한다. TV 광고에서는 전화로라도 얼굴을 계속 보고 싶어 하는 연인이 나오지만, 사실 조금만 오래된 연인이라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상대의 딴 짓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족쇄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배우자.부하직원에 대한 감시통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나온다.

최근 구글이 선보인 3D 길거리 지도 검색 '스트리트 뷰'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렸다. 뉴욕.마이애미.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5개 도시에 대한 입체 지도 서비스다. 구글 직원들이 특수 카메라로 찍은 360도 화면에, 줌인 기능이 있어 길거리 구석구석을 상세하게 볼 수 있다. 1억 화소의 고화질이라 일광욕하는 비키니 여성, 성인업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남성이 고스란히 찍혔다. 사생활 침해 논란에 대해 구글은 "공공장소에서 찍힌 이미지로 누구나 길거리에서 쉽게 찍거나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이 서비스를 미국 내 35개 도시, 유럽과 아시아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 업체들도 그 시장성에 착안하고 있다. 유사한 3D 서비스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사생활 침해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푸코가 말한 '팬옵티콘(원형감옥)'의 전면화다. 디지털 기술이 중앙의 간수가 원형감옥의 죄수들을 '모두 보는' 것 같은 감시체계를 가능케 한다는 말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팬옵티콘의 감시체계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어 사회규범 자체가 팬옵티시즘(panopticism)으로 바뀐다"고 썼다. 이미 그렇다. 눈에 거슬리지만 범죄예방 효과 때문에 CCTV를 감수한다. 스트리트 뷰는 벌써 인기를 끌고 있다. 내 몸의 일부인 휴대전화가 24시간 감시자가 될 수도 있다. 전면적이고 일상적인 감시가 생활원리로 내재된 감시사회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