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은 터지는게 낫다(유승삼 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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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대통령과 박태준씨의 탈당으로 초래된 민자당의 분열상은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뭐가 뭔지 헷갈리게도 하지만 실은 올 것이 온 것이고 깨질 것이 깨진 것 뿐이다.
○민자분열 올것이 온것
물론 큰 틀에서 보면 그동안의 민자당 각 정파는 한식구가 될만도 했다. 노 대통령을 포함해 김영삼씨도,김종필씨도,또 박태준씨도 보수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선 똑같았다. 그러나 우리 정당이 언제 그런 이념정당이었던가. 그저 당장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한 줄에 섰을뿐이지 않은가.
게다가 민자당 지도부는 제각기 그 성장과정이 달랐다. 달라도 보통 다른 것이 아니라 성장과정만 놓고 보자면 도저히 한 줄에 서기가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권력유지와 권력쟁취라는 서로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솥밥을 먹어왔으니 그 현실적 필요가 없어지게 되면 갈라서게 될 것은 정한 이치다.
김영삼씨도 그러한 운명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에겐 최소한 대선까지는 한 식구로서 유지해 나가야할 현실적 필요성이 남아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기대보다 일찍 깨져버린 것 뿐이다.
이는 당연히 김영삼씨에게는 타격일 것이다.
그러나 민자당의 분열은 정치발전의 측면에서 볼때는 차라리 자연스런 일이며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뿌리도 다르고,생각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눈앞의 이해관계로 뭉쳐 한 유니폼을 입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정치를 통해 경험했듯 그것이 결과하는 것은 치졸한 먹이싸움이요,그로 인한 정치의 표류뿐이다.
대선이후 새로운 이합집산에 의한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있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일이다. 그것이 민자당에는 대통령이라는 고리가 끊어짐으로 해서 한발 일찍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민자당의 분열은 앞으로 있을 대대적인 정계개편의 서주일 뿐이다.
○이질성 야도 마찬가지
이합집산의 가능성은 야당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민주당의 경우 김대중대표는 당선여부에 관계없이 일선에서 후퇴할 것임을 공언했다. 김대중대표없는 민주당이 그대로 유지될리 없다.
민주당 역시 속을 들여다보면 민자당 못지않게 서로 뿌리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좋게 말해서 한시적인 연합전선일 뿐이다.
급조된 국민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계개편의 태풍에 당장이라도 흩어질 수 있을 만큼 접합력이 약한 정당이다.
이런 정당들의 무성격과 야합구조야말로 우리나라의 정치혼란과 국민의 정치적 불신감의 본질이다.
정당의 성격과 구조자체가 그러하니 정치인들은 상식을 절하는 행동들을 해대고,그러고도 부끄럼조차 없다. 세상에 이른바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수틀린다고 아버지품,어머니품을 찾고 집에 틀어막혀 버리는 어린아이같은 응석과 떼를 부리는 곳이 이 땅말고 또 있을까.
정치인으로서 불만이 있다면 오히려 중앙무대를 찾아 당당히 그것을 공표할 일이지 지방엔 왜 내려가며 칩거는 왜 하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그런데도 그것이 통하고 정치변화를 낳으며 그들의 입지를 더 강화시켜주는게 우리의 정치현실이라는 점이다.
이런 정치풍토가 앞으로 지속돼서는 안되며 지속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예나 이제나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과제는 지역갈등,보혁갈등,노사갈등,그리고 분단문제다.
○색깔없는 정당 무의미
과연 어느 정당,어느 대선후보가 이 문제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합집산을 아무리 거듭해 신당에 또 신당을 탄생시켜도 만약 그것이 우리 사회의 그런 과제에는 관심조차없이 그저 기득권의 영토싸움,먹이싸움에 목표를 둔 정당이라면 애당초 탄생할 가치조차 없는 정당이다.
그렇다면 기존 정당이든,신당이든 그런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동질성이 뚜렷한 분명한 성격의 정당이 돼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일이지만 3당 합당은 야합에 의한 정치적 「미봉」이었을 뿐이다. 미봉은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다. 민자당은 그 미봉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 뿐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때는 민자당의 분열이 놀랄 일도,불안해 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반길 일인지도 모른다. 정당의 성격이 분명해지면 해질수록 선택도 쉬워지며 대선경쟁도 한결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다.
각 정당이나 대선후보들도 어차피 맞이할 정계개편이라면 이번 대선을 앞두고 그 채비도 해야 한다. 그것은 득표만을 노려 갈수록 무성격의 야합적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보다 더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명백한 정책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래야 대선뒤에 있을 정계개편도 좀더 순조로울 수 있을 것이며 또 그것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길도 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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