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문제로 말못할 고민|월남난민2세 전 육상선수 최진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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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현역입영만은 면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국말도 서투른 제가 군대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보다도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제가 군에 가버리고 나면 제 가정의 생계가 막연해집니다.』
80년대 중반 한국육상의 기대주로 성가를 떨쳤던 「보트피플」출신 월남인2세 최진영(21·중앙개발근무)씨가 최근 군입대 영장을 받아들고 고민에 빠져있다.
현역 은퇴 후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 이제 한가정의 가장으로 자리잡던 차에 난데없이 「의정부소재 ○○기지로 11월24일까지 입소하라」는 입영통지서가 날아든 것.
『날벼락입니다. 통지서를 받아들고 몸져 누워있는 어머니(월남인 리티무이·52)와 저는 한없이 울었어요.)결코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옛 기억들이 한순간 가슴에 북받쳐온 탓이었어요. 비단국적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역입영을 하라니 납득할 수 없어요.』
최씨는 75년 사이공이 함락된 후 베트콩치하에서 고생하다 78년9월 자유를 찾아 두 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을 찾은 월남난민출신.
그러나 아버지는 찾지 못하고 한국적십자사가 마련해준 공항근처 화곡동의 6평짜리 단칸방에 거처를 마련, 어렵게 살아오다 84년 제주소년체전에서 육상단거리 3관왕을 차지하면서 일약 유망주로 떠오른게 계기가 돼 각계로부터 답지한 성금으로 지금의 개포동 시영아파트(17평형)로 이사했다.
당시 서울발산국 6년생이던 소년 진영군은 84년 소년체전 국민학교부에서 남국80m에서 9초59로 우승한 것을 비롯해 2백m(23초91), 4백m계주를 거푸 석권하며 3관왕에 올라 각광을 받았던 것.
이를 계기로 소년 진영군은 이듬해 서울체중에 진학, 육상단거리 예비스타로 착실한 수업을 쌓았으나 그것도 잠시뿐 몇해 가지 않아 가정형편이 어려워 도중하차하는 쓰라림을 맛봐야 했다.
병역법상 최씨는 당연히 입영대상. 얼굴도 모르는 한국인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 자신은 어머니·두 동생등 식솔을 거느린 가장인데도 6남매 중 넷째아들로 등재돼있어 징집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 않으면 극빈자로 처리되는 길밖에 없는데 현재의 시영아파트는 종합토지가격이 1천만원을 넘어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이 법무청측의 설명이다.
최씨의 고민은 자신이 입영할 경우 허리디스크로 누워있는 어머니의 뒷바라지며 직장을 구하지 못한 두 동생의 생계,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말도 서투른 월남사람이 어떻게 전방에서 3년간 군대생활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최씨 일가는 자신이 중앙개발에서 받는 월급과 적십자사에서 분기별로 주는쌀20㎏및 18만원의 보조비로 네식구가 어렵게 살고있다.
리티무이씨는 세 자녀를 낳고 살다 월남패망 직전인 지난 74년 귀국하면서 초청하겠다던 남편 최씨가 그토록 야속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79년 한국에 와보니 남편 최씨는 이미 5년전에 재혼해 호주로 이민을 떠난 뒤였고 남아있던 진영의 할아버지가 손주들만 입적을 허락해 그나마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
어머니 리티무이씨에게는 한가지 소망이 있다. 아들의 병역문제가 해결되면 일가족이 월남으로 돌아가 정착하는 것.
자녀들이 서투르나마 한국어를 구사하고 머지않아 한월 수교가 성사되면 여행사 등에서 통역·번역업무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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