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명예의 전당에 우뚝 … "이젠 그랜드 슬램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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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세리(中)가 7일(한국시간) 한국 선수들(왼쪽부터 양영아, 김주연, 이미나, 손세희, 홍진주)과 USA 투데이의 한국 특집 취재를 위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하버 디 그레이스=월간 골프뷰 제공]

미국 메릴랜드주의 고도(古都) 하버 디 그레이스의 불리록 골프장에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등 LPGA 투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22명의 입간판이 서 있다. 이 모습이 마치 신입 회원인 박세리(30.CJ)에게 환영의 박수를 보내는 듯하다.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간 '요술공주' 박세리의 마술이 10년 만에 이뤄졌다.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8일 새벽(한국시간) 박세리는 LPGA투어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인으로서도 첫 번째다. 2004년에 이미 가입할 수 있는 점수를 땄지만 현역 선수의 경우 10시즌을 치러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유보됐다가 드디어 전당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LPGA는 열 번째 출전한 대회의 1라운드를 마치면 한 시즌을 치른 것으로 인정해준다. 박세리는 LPGA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됨으로써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자동적으로 가입했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7일(현지시간) 개관될 한국관의 박세리 모습. 사진에는 박세리의 샷 모습과 함께 ‘나는 경기를 할 때 신발과 가방에 태극기를 단다. 나의 조국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사진에 나온 사람은 한국관 개관을 주도한 박물관 아시아 민족학관장인 폴 테일러 박사.[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제공]

박세리는 1라운드를 마치고 스코어카드에 사인한 뒤 기자실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했다. 경기를 마친 일부 한국 선수와 LPGA 커미셔너인 캐럴린 비벤스가 참석, 축하했다. 3단 케이크와 꽃다발이 박세리를 반겼다. 이지영(하이마트)은 "후배들 중에 세리 언니처럼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후배가 다시 있을까 궁금하다"고 말했다.

박세리의 업적은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전성기에 이룬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함께 뛰면서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박세리의 명예의 전당 공식 입회식은 9월 플로리다주에서 열릴 예정이다. LPGA 투어 관계자는 "파티 비용만 50만 달러(약 4억6000만원)가 들어가는 성대한 잔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 디 그레이스(메릴랜드주)=성호준 기자

박세리 인터뷰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인연이 많다. 일부러 이 대회를 명예의 전당 대회로 맞췄나.

"아니다. 우연이다. 그러나 첫 우승 대회가 명예의 전당 가입 경기가 돼 매우 특별한 느낌이다. 오랫동안 부진하다 지난해 우승으로 재기에 성공한 대회여서 더 그렇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것이 드디어 현실이 됐다.

"미국에 올 땐 정말 꿈만 가지고 왔다. 하루하루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벌써 10년이 됐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명예의 전당 선배들이 축하해주나.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카리 웹이 '하루 남았다'고 하기에 무슨 말인가 했더니 명예의 전당 가입 날짜를 카운트다운해 주는 것이었다. 소렌스탐은 부상 때문에 경기에 자주 출전하지 못해 마주치지 못했다."

-이제 목표는 뭔가.

"그랜드 슬램과 '올해의 선수상'이다. 미국 오면서 가장 커다란 목표가 명예의 전당이었고, 그보다 작은 목표가 그랜드 슬램과 올해의 선수상 순이었다. 가장 큰 목표를 먼저 이뤘으니 나머지 목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랜드 슬램은 한 대회(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만 남았다."

-지난 10년 동안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 선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더라. 메이저대회에서 2승을 했는데도 우연으로 여기더라. 태극기가 걸린 것도 내가 미국에 온 지 2~3년이 지나서다."

-10년 동안 변한 게 뭔가.

"실력이 많이 늘었다. 최고의 선수들과 접하면서 많이 배웠고 좋은 사람을 만났다. 여기에선 혼자 다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것도 배웠다."

-앞으로 10년 후엔 뭘 하고 있을까.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자리에서 뭔가를 이룰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으니 영원한 LPGA 투어 멤버이고 내가 원한다면 항상 투어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후배들이 많이 축하해준다.

"후배들이 밥 사라고 난리인데 왜 매일 나만 사야 하나. (웃으며) 농담이다. 사실 대회 출전하고, 연습하고, 이동하느라 다 같이 모이기가 힘들다. 즐겁게 모였으면 좋겠다. 책임감이란 게 생긴다. 앞으로 후배들이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가 도와주고 싶다."

하버 디 그레이스=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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