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TV광고 ? 베니스, 해답을 전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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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에 설치된 조각가 이형구의 ‘펠리스 카투스 아니마투스’와 ‘무스 아니마투스’.

올해로 52회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의 현대 미술 축제다. 10일 개막해 11월21일까지계속되는 '베니스 비엔날레 2007', 그화려한 현장을 비엔날레 재단이 7일(현지 시간) 언론에 사전 공개했다. 본 전시는 19세기 조선소 창고건물을 개조한 아르세날레 등에, 역대 최다인 77개국이 참가한 국가관은 바닷가에 있는 카스텔로 지아르디니(공원) 지역 등에 마련됐다. 전시장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와 미술관계자 수천 명으로 붐볐다.

#화제의 이탈리아관 비디오

'미국 여배우 샤론 스톤과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로 맞대결을 벌이다'.

미리 전시장을 둘러본 미술관계자와 언론인들은 이번 비엔날레의 화제작으로 이탈리아관 비디오 영상을 꼽았다. 아르세날레 내부에 신설된 이탈리아관에서는 '국가대표급' 비디오 작가인 프란체스코 베졸리의 '민주주의'와 주세페 페논의 통나무.나무껍질 설치 '린파의 조각'이 공개됐다.

특히 '민주주의'는 미국 대선에서 샤론 스톤이 공화당, 앙리 레비가 민주당 후보로 나와 광고 캠페인으로 맞대결을 벌이는 비디오 영상. 작품이 생생한 실감과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주는 이유는 최고의 전문가와 협력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스톤의 광고 제작을 지휘한 인물은 마크 맥키넌. 2004년 대선 레이스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광고 캠페인 수석책임자였고 현재 존 맥케인 상원의원의 대선 도전에 수석 참모를 맡고 있다. 앙리 레비의 광고를 감독한 인물은 빌 냅.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전에서 대변인을 맡았던 전문가다. 작품은 양측의 치명적인 전략들을 노출하면서 명성과, 언론의 파워와, 진실조작이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제대로 된(proper) 선거 광고가 제작되도록 하는 데 뜻을 둔 프로젝트"라고 제작의도를 설명했다. 이탈리아관의 넓이는 1000 평방m로 한국관의 5배 규모다.

#본 전시

'감각으로 생각하기-정신으로 느끼기: 현재 시제의 미술'이라는 올해의 주제와 관련,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작품들이 전진 배치돼 주목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작가 레온 페라리(87)는 핵폭발 이후의 버섯구름을 본 뜬 작품 앞에 뼈다귀로 만든 거대한 덩어리를 함께 설치했다. 미국의 찰즈 게인즈(63)는 9.11 테러 당시의 뉴욕을 재현하는 조각을, 불가리아의 네스코 솔라코프(50)는 소총의 각종 사진과 실물을 함께 전시했다. 본 전시 참여 작가 96명은 미국 예일대 미대 학장이자 평론가.기획자인 로버트 스토가 총감독을 맡아 선정했다. 루이즈 부르주아, 솔 르윗, 브루스 나우먼, 게르하르트 리히터, 수전 라우셴버그 등의 대가와 이제 막 떠오르는 신진들의 조화가 돋보인다. 근년의 비엔날레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미니멀리즘 작가들과 이제 막 미술사에 편입되기 시작한 80~90년대 대가들이 다수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2007의 아프리카관에 전시된 작품 ‘세이브 맨하탄(Save Manhattan)’. 모로코의 작가 무니르 파트미가 스피커들로 맨하탄의 스카이 라인을 재현했다. [베니스 AFP=연합뉴스]


#한국관

86년 처음 참여한 한국은 95년부터 한국관을 마련했다. 올해의 경우 홍대출신으로 예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설치조각가 이형구(38)의 'The Homo Species(인간 종)'로 승부를 걸었다. 작가 한 명만 소개하는 개인전 형식은 역대 처음이다. 전시감독을 맡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안소연 학예실장은 "비엔날레에서 넘쳐나는 시각적 홍수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렬한 시각적.지적 체험을 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시는 박물관과 실험실이라는 두 주제로 나눠놓았다. 중앙 홀엔 유명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의 캐릭터 고양이와 쥐가 쫓고 쫓기는 모습을 뼈다귀로 표현한 '펠리스 카투스 아니마투스'(애니메이션종 고양이), '무스 아니마투스'(애니메이션종 쥐) 를 설치했다. 이들 가상의 종에 대한 자료와 유골도 자연사 박물관처럼 전시했다. 자연광을 차단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방식으로 집중도를 높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상의 미래를 담은 실험실 '오브젝추얼스'가 자리 잡고 있다. 광학기구와 헬멧 등을 이용해 신체를 극적으로 변형시키면서 관상학적 유머와 위트를 담아낸다는 아이디어다. 개막일엔 작가가 이를 직접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할 예정이다. 작가가 베니스에서 제작한 5분 19초짜리 퍼포먼스 비디오는 이방인이 낯선 도시에서 겪는 혼란을 담고 있다.

#기타 국가관과 부대행사

미국관은 96년 작고한 쿠바 출신 개념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을 내세웠다. 시적인 이미지, 쉽고도 마음을 움직이는 공공미술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작가다. 특히 넓은 하늘에 외로운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장면이나 누군가 잠을 잔 흔적이 남은 침대 등의 사진이 대표적이다. 전시의 일환으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사진을 담은 대형 광고판 12개가 베니스 시내 전역에 설치됐다.

일본관은 건물 등의 표면에 종이를 대고 연필심을 문질러 탁본을 만드는 작가 오카베 마사오(64)가 히로시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내놨다. 우지나 항에서 뜬 1400장의 탁본, 원폭 폭발의 흔적을 담은 우지나 기차역의 플랫폼 돌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6m 길이의 설치 등이 시선을 고정시켰다.

중국관은 세계적 큐레이터 후 한루가 감독을 맡아 쉔 유안, 인 슈젠, 칸 쉬안, 카오 페이 등 20대 후반에서 40대에 이르는 여성작가 4명의 작품을 출품했다. 푸장성 출신으로 프랑스에 거주하는 쉔 유안(48)의 작품이 돋보였다. 확대한 우유병과 젖꼭지, 서양으로 입양되는 중국 어린이의 여행을 담은 비디오를 국가관 정원에 설치했다. 이민과 입양,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부대행사 중 세계적인 영상설치 작가인 빌 비올라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마련한 '해변이 없는 바다'가 화제다. 산 마르코 광장 인근 산 갈로 교회에서 스크린 3개를 동원해 10일부터 11월24일까지 상영한다.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 기획하고 미국 헌치 오브 베니슨, 제임스 코헨, 한국의 국제 등 갤러리 3곳이 공동 투자한 신작. 우리 삶 속에 침투해 있는 죽은 자들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이다.

베니스(이탈리아)=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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