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쌀 수출 1호 군산 '제희미곡처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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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쌀 수출 1호’ 기업인 제희미곡종합처리장의 공동대표인 한광희(右).건희 형제가 ‘철새 도래지 쌀’의 포장작업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군산=프리랜서 오종찬

"농민들도 좁은 안방만 지키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해외로 나가 승부를 걸어야 할 때입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52t의 쌀을 이달 중 미국에 수출하게 된 제희미곡종합처리장 한건희(44) 공동대표는 7일 전북 군산시 대야면 도정공장에서 마무리 포장작업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희미곡종합처리장은 5일 농림부로부터 승인을 받아 '국내 쌀 수출 1호'로 기록된다. <본지 6월 7일자 2면>

미곡종합처리장(RPC)은 농민들이 재배한 벼를 구매한 뒤 쌀로 가공해 판매하는 곳이다. 제희RPC는 4대 100여 년의 가업을 이어온 '도정(搗精) 명가'다. 증조 할아버지 때부터 방앗간을 시작해 지금은 광희(48).건희 두 형제가 운영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틈만 나면 쌀 도정에 대해 배웠어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들어 나중에는 집안 유전자에 쌀 인자가 섞였다고 농담할 정도였어요."

제희RPC는 주변 1100여 농가로부터 일 년에 1만3000여t의 쌀을 받아 도정한 뒤 '철새 도래지 쌀'이라는 브랜드로 판매한다. 요즘은 20㎏짜리 3000여 포대를 매일 수도권으로 올려 보낸다. 서울.경기 지역에 사는 45만여 명이 매일 이 업체의 쌀을 먹는 셈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170여억원, 올해는 2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형제가 쌀 수출에 눈길을 돌린 것은 4년 전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한창일 때다. 값싼 수입쌀을 들여 오기 위해 중국.호주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외국 쌀값이 당장은 싸지만 장기적으론 올라갈 것으로 판단해 수입을 포기했죠. 대신 해외 교민들이 맛 좋은 우리 쌀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는 수출이 유망하다는 역발상을 하게 됐죠."

이때부터 교포들이 많이 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정기적으로 1㎏짜리 쌀 20~30포대씩을 들고 나갔다. 한인 음식점이나 교회 등에 시식용으로 쌀을 제공하자 모두 좋아했다.

새로운 포장방법도 개발했다. 미국 현지까지 운송하는 데 2~3주 이상 걸리기 때문에 장기 보존하면서 좋은 밥맛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이들은 쌀의 수분이 15~16% 정도 유지되도록 포장하는 방법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했다.

자신을 얻은 형제는 지난해 11월부터 미국의 쌀 도매상인 해태글로벌과 협상해 이번에 수출 계약을 맺고 농림부 장관의 추천서까지 받았다.

"제희RPC가 가공한 쌀이 인기를 끈 것은 땅.생산자.도정 능력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덕분"이라고 광희씨는 분석했다.

무기질.미네랄이 풍부한 간척지에서 생산된 쌀이라 영양분이 많고 밥맛이 좋다. 농민들과의 철저한 계약 재배를 통해 쌀의 품질을 유지한다.

한씨 형제는 쌀 가공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계절과 날씨.습도에 따라 매일 도정 방법을 달리한다.

건희씨는 "자동화된 공정만 믿고 365일 똑같은 방법으로 벼를 가공하면 좋은 쌀이 나오지 않는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철새 도래지 쌀'은 2005~20006년 소비자 단체가 뽑은 '우수 브랜드'에 선정됐다.

군산=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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