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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천여명 예쁜 한글 이름 지어 줘|"국호도 한글로〃80년엔 국가상대소송|20년 동안 우리말 이름운동 펴온 밝한샘 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하고 많은 국경일 중에 왜 하필 한글날을 지난해부터 휴일에서 제외시켰는지 아무래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종대왕이 나랏말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업적을 기리고 우리말 사랑의 길을 곰곰 생각해보는 한글날이 돌아오면 문득 떠오르는 「기인」밝한샘씨(56). 5공 초인 80년 서슬 퍼런 시절 대한민국 국호를 순수한 우리말인「아름나라」로 고쳐야 한다며, 83년에는 우리말 땅이름을 찾아달라며 각각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한바탕 파란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강화도의 마니산을 마리산으로, 한라산을 하날산으로, 중문 관광단지를 중물관광단지로 각각 고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귀에 익을 정도.
그는 자신의 말대로「한글이름에 미친」듯 이번 한글날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뭔가에 홀린 것처럼 한건(?) 올렸다.
부인과 함께 신도시 분당을 두루 돌며 모두2백40개 점포의 상호를 조사했다. 그 결과 95%가 한글로 상호를 표기하고는 있었으나 순수한글로 된 것은 11%에 그쳤고 한문이름이 69%, 영어이름이 17%에 달하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뒤죽박죽 상호」도 3%나 됐다.
『제가 25년 전 큰아들 이름을「보리나라」로 짓고 이어 유리나라·새미나라 등 이름을 딸·아들에게 지어줄 때만해도 한글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기 힘들었지요. 그런데 지난해 한글날을 앞두고 전국 10곳에서 1천명을 골라 조사해봤더니 서울 강남구일부지역에서 어린이의 16%가「고아라」「정다운」등 한글이름을 갖고있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음을 알고 저 자신도 깜짝 놀랐어요.』
호적상으로는 아직 법률상 한계 때문에 박한샘으로 남아있는 그는 최근에는 아예「작명가」로 나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미국교포와 전국각지 사람들에게 한글이름을 만들어 주고 있다. 커튼도매상을 하는 틈틈이 연구·상담을 게을리 하지 않아 지난 일년간 지어준 이름만도 약1천개.
『지금까지 가장 긴 한글이름은「박차고 나온 놈이 샘이나」「금빛솔여울에 든 가오름」등 성을 빼고 아흡자로 돼있지요. 그러나 80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글 이름 펴기 모임의 두루맡(총무)인 김창수씨(예명 김텃골)가 오는 10월 큰아들 이름인「금빛솔여울에 든 가오름」보다 더 멋있고 글자수도 하나 더 많은 이름을 같이 짓기로 해 국내에서 가장 긴 이름의 신기록이 세위질 겁니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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