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수산이 본 이모저모(이웃사람 일본인: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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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작은 것이 좋다」… 축소 제일주의/요람에서 무덤까지 작은 것 투성이/「접는」형식으로 소형화… 기능·용량은 그대로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일본 부부의 출산율이 지난해에는 1.53으로 더 떨어졌다. 부부가 아기를 하나반 밖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한쪽에서 준엄하게 『도대체 일본 여인들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 하고 하는 짓인가』라고 나무라면 『우리가 애낳는 기계냐』라는 메아리가 요란하다.
해가 갈수록 떨어지기만 하는 이 출산율에 의하면 일본은 해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통계만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이런 큰일이 있나 싶다. 이러다간 언젠가는 이 지구상에서(죄송합니다만) 「일본인이 씨가 마르는 날」이 온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떠오르는 것이 일본이 없어지면 큰 일은 큰 일이다 싶다. 조그만 컴퓨터,손바닥에 들어가는 전화기 정도야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만든다고 하자.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 세상에는 작게 만들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걸 누가 만든다는 말인가.
일본의 한 특색으로 이야기 되는 것에 바로 이 「작은 것」이 있다. 일본 혹은 일본적이다 하면 그것은 바로 작다는 의미로 떠오를 정도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를 떠나 「작은 것이 좋은 것이다」까지 와 있는듯 싶은 일본이다.
「키작은 덧니박이」로 상징되던 일본인의 모습도 전후의 식생활 개선으로 많이 달라졌다. 키도 커졌고 다리도 쭉쭉 뻗었으며 늘씬해졌다. 다만 그 덧니만은 여전하지만.
그러나 일본에는 여전히 작은 것들로 가득차있다.
여전히 집은 작고,어쩌다 큰집을 짓고 사는 사람도 작은 방을 만들고는 거기 옹기종기 모여앉아 「고다쓰」(화로)에 발을 집어넣는다. 어찌 살아서의 집만 작은가. 죽어서 묻히는 묘지까지 일본은 작기만 하다. 담뱃갑만한 책도 쉽게 볼 수 있고,딱 한 컵이 나오는 캔맥주도 있다.
작아야 할 것이 작아야지 맥주캔이 작아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것을 처음 보았을때 얼마나 신기해 보였으면,아내는 귀국하는 독일 친구에게 『독일이 맥주의 나라라고 하던데 그렇지만 이렇게 작은 맥주는 없을 걸』하면서 그 작은 맥주를 선물했을까.
그런데 이 작다는 것이 진정으로 좋고,아름답고,인간적인 것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 하루하루 일본에서의 생활이다. 이 작은 것 투성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하루도 안만나고는 살 수 없는 것의 하나가 작은 찻집의,작은 탁자의,작은 의자들이다. 이자카야라는 선술집 의자도 마찬가지다. 「이래가지고는 한국에서는 장사 안되지」 싶은 것이 바로 이런 찻집·술집의 의자들이다. 옆사람과 어깨가 부딪칠 정도의 작은 의자들에 앉아 있자면…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벌을 서고 있나 싶다.
견딜 수 없는 것 가운데는 일본이 개발해 세계가 그렇게 따라가 버린 작은 컴퓨터도 있다. 나 또한 이 작은 휴대용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고 있지만 그때마다 중얼거리곤 한다. 작은 것은 죄악이다… 라고. 열개의 손가락을 마음놓고 펴지 못하고 조그맣게 오므려야 칠 수 있는 것이 노트 크기의 이 컴퓨터다. 인간의 손이 갖는 자유를 이토록 제약하는 물건이 또 있을까. 인간의 체형마저 줄이려드는,창조주에 대한 이토록 불경한 반역이 있을까.
왜,무엇이 일본에 「작은 문화」를 만들어낼 것일까. 「다타미」가 상징하듯 일본문화에는 한 예로 「접는다」는 전통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작다는 것을 뒷받침 하는 것이 바로 이 접는 행위다.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그것은 펴면 제넓이로 돌아간다.
바로 이 접는 발상이 작지만 그 기능이나 용량을 줄이지 않는다는 놀라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일본적 사고가 현대문명과 만나 꽃피워낸 상품들인 것이다.
「작게」라고 하는 일본적 사고와는 달리 우리에게는 「푸짐하게」가 있다. 일본 식당에 가 우동을 시키면 국수와 함께 주는 단무지가 한젓가락 밖에 안되게 적다. 그것도 송송 썬 것을 내준다. 이 친구들이 이거 사람 먹으라고 주나,한번쯤 그 얼굴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그와는 달리 식당에서 남겨버리는 반찬을 없게 하자고 우리 보사부가 애쓰지만 그때마다 나는 「저거야말로 되지도 않을 탁상공론인데」싶다. 「푸짐하게」라고 하는 민족정서와 상반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작게 줄이는 일본에서 이상스레 점점 커져가는 것이 몇가지 있다. 전자제품 가운데 텔리비전과 냉장고가 그렇다. 우리도 별로 다를 것이 없기는 하지만 또 있기는 있다. 여자의 코,여자의 키,여자의 눈,이것은 클수록 좋다에 속한다.
「작게」와 「푸짐하게」라는 상반되는 사고에서도 두 나라에 꼭 닮은 것이 하나 있다. 일본식당 그 좁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있자면 꼭 얻어먹는 꼴이 되듯이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홱홱 집어던지듯 가져다 놓는 그 불친절 때문에,또 내돈 내고 사먹는게 아니라 한술 얻어먹는 꼴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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