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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짊어진 인류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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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유엔 활동에 대한 세계인의 전폭적인 지지입니다. 최근 실시된 월드 퍼블릭 오피니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74%에 이르는 대다수의 사람이 학살 방지와 약소국 보호, 인권탄압 실태 조사 등에서 유엔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심지어 유엔에 대한 회의론이 가장 심각한 미국에서조차 4명 중 3명꼴로 유엔의 역할 강화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인 대부분이 자국의 대외정책이 유엔과의 협력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제가 지갑에 넣어서 다니는 낡은 종이 쪽지 하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서른에 이립(而立), 마흔에 불혹(不惑), 쉰에 지천명(知天命), 예순에 이순(耳順)"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바로 '이순'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분별하여 들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분별력'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성공이 미리 약속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중요한 것은 분별력을 갖고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함께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과의 협상 연장을 시도해 왔습니다. 아프리카연맹(AU)과 협력해 국제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 위한 협상이었습니다. 수단 정부는 실제로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2만 명 대신 3500명의 유엔군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우리는 부분적인 성과를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외교적 노력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무고한 생명들의 희생이 끝날 날이 멀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네 달 동안 중동을 네 차례 방문했습니다. 또 얼마 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도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시리아를 국제무대로 불러들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조용한 외교가 언제나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란 영해 침범으로 인한 영국군 피랍사건에서 보듯 가장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효과를 거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부터 독일에서 열리는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에서는 기후변화 문제가 중점 논의됩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탄소배출권 교역 등 기술적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기후변화의 위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긴박한 우리들 자신의 문제입니다. 기후변화 현상은 본질적으로 불균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전 인류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닙니다. 부유한 국가들은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비할 자원이나 대응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막화의 피해를 보고 있는 아프리카와 해수면이 육지를 침식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나라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는 훨씬 큽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신문에서 인류가 당면한 비극적인 뉴스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얼마나 진정하게 듣고 있습니까. 몸과 마음을 다해 그들을 돕겠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유엔 사무총장인 제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여러분의 성원을 기원합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