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외교와 사소외교/김호길(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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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중국수교와 노태우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북방외교의 마무리 차원에서만이 아니고 역사상 중국과는 근대에 와서 처음으로 사대외교가 아닌 대등한 위치에서 수교를 이룩했다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과거 조선조 중국의 관계는 물론이고 북한과 중국도 사대관계며,한국과 중화민국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생각했을 때 시작은 사대라 볼 수 있다.
○대등한 한중수교 흐뭇
사대라는 말은 『맹자』에 나온 것으로 「오직 인자만이 대로써 소를 섬길 수 있고(이대사소),오직 지자만이 소로써 대를 섬길 수 있다(이소사대)」는 말의 이소사대에 어원을 두고 있다.
강대국이 소국을 힘에 의해 식민지화 하지 않고 독립국으로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사소인데 이러한 정책은 인자의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소국이 대국을 종주국으로 섬겨 자기나라를 안전하게 보전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로서 사대는 지자의 행위라는 것이다.
국제관계는 힘의 균형여부에 따라 대등한 관계와 사대 및 사소의 관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차대전 후의 미일관계는 일본으로 보아서 사대외교다. 핵우산 밑에서 자기나라의 국방을 미국에 맡기고 미국을 자유세계의 종주국으로 해 냉전시대를 지났다. 사대외교의 결과로 방위비를 절약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평화산업에 투자하여 지금 세계 최강의 경제국을 만들었고 드디어 국방에 있어서도 핵무기를 제외하고는 자립국방을 이룩했다. 일본의 미국에 대한 사대는 힘에 의해 이루어졌고 굴욕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지혜로운 외교정책이 되었다.
미국은 2차대전후 사실상 자유세계의 종주국이었지만 과거 사회주의국가 가운데 소련의 위치나 중국의 천자사상에 비하면 주권이 훨씬 존중돼 미국의 우방외교는 사소외교라 부를 수도 있다. 소련을 종주국으로 하는 사회주의 집단에 효과적으로 자유세계가 대응하는 방법이 자유진영 나라들의 경제를 복구시키고 부강하게 만드는데 있었으며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이 패전국을 돕는 사소정책을 쓰게 되었다.
반세기에 가까운 미소의 대결에서 미국이 무혈승리를 거두게된 것은 시장경제체제의 우월성에 기본바탕이 있지만 사소정책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사소가 인자에 의한 정책이라면 미국은 사소를 통해 인자무적이란 말을 실증한 셈이다.
○상공농사로 바뀐 순서
돌이켜 보면 지난 40여년간 우리가 공산진영과의 냉전과 열전 가운데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미국에 대한 사대외교와 미국의 우리에 대한 사소외교가 합쳐져서다. 그동안 우리는 핵우산의 보호뿐 아니라 미군에게 방위의 일부를 맡김으로써 안보를 유지했고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가 과거 공산주의의 두 종주국과 지금 사대외교가 아닌 대등한 입장에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시대의 우리 국력을 감안한다면 중국에 대해 사대외교가 현명한 정책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동지사가 만주벌판을 지나 만리장성을 통과해 북경의 자금성에 도착했을때 국토의 넓이,장성의 규모,궁궐의 위용에서 사대 이외의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국가원수가 허리를 펴고 자금성을 방문하는 위치에 우리가 지금 이르렀지만 불과 30년의 현대화 역사 밖에 가지지 못한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앞날을 반드시 안심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 시점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의 국력과 우리 국력을 비교해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일 것이다.
과거 직업의 귀천을 얘기할때 사농공상의 순서를 들었지만 현대에 와서 국력배양을 위한 중요도에서는 상공농사의 순서가 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팔지 못하면 회사가 도산하는데서,그리고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상업을 위주로 나라를 유지하는데서 공이나 농보다 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와 같은 소국을 제외하고는 나라를 지탱하기 위해 상업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상업의 뒤에 공업과 농업이 뒷받침 되고 공업과 농업을 과학이 뒷받침할때 경제적으로 부강해진다.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나은 점은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고 상업적 측면이다. 역사적으로도 고대의 희랍,중세의 스페인 또는 포르투갈,근세의 영국 등이 상업을 중요시해 경제적 강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중요시 하는 직업은 사상가·학자·예술가·관리 등 선비직업이고,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자라는 개념이 없으며 금융개념은 『베니스의 상인』에서처럼 죄악시 되는 것이 사회주의다. 앞으로의 경쟁은 상에서 앞선 우리나라가 기술을 발전시키는 속도와 기술과 학문에서 앞선 러시아나 중국이 상업을 발전시키는 속도에서 이루어진다.
○과기에 바탕 힘키워야
공정한 선거는 국가존립의 근간이다.
그러나 공정한 선거문제만이 정치나 행정의 전부는 아니며 국민들에게는 정치보다 경제가 더욱 중요하다. 만약 사대외교를 치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국력을 기르는데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국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상업을 중시하고 상업 뒤에서 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키고 공업과 농업을 현대화 시키는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 때는 기술을 하는 정치가,기술을 중시하는 행정가를 필요로 하며 기술에 바탕을 둔 산업으로 선진국과 대등한 외교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포항공대학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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