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용틀임한다<2>「개방실험」성공…도약 가속도|심천 특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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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심천은 거대한 용광로의 화구다. 비효율과 정체로 특징 지워지는 사회주의의 냉기로 덮여있던 중국대륙에 활력과 효율의 열기를 불어넣는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심천이다.
『숨을 쉬고, 떠들썩하며, 환하다.』
지난1월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의 이른바 남순이후 중국인들이 심천의 인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대륙의 대부분 도시들이 밤9시가 되기도전에 인적이 끊기는 「검은 도시」인데 비해 심천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거리에 늘어선 간판들부터 다르다.
쾌찬 (패스트푸드)· 쾌조(속성사진)· 쾌속타자· 쾌속하인(복사) 과 같은 「빨리빨리」 가 거리곳곳에 등장했고 급초·급빙과 같이 모집광고도 즐비하다.

<"사회주의 홍콩">
거리의 버스에까지 「빨리 타고 빨리 내리라」(즉상즉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변방의 작은 어촌이었던 심천이 불과 10여년만에 40, 50층의 초현대식 빌딩이 어깨를 겨루는 대도시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심천속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난세에 영웅 난다』『돈만 있으면 귀신도 앉혀 두고 맷돌을 돌리게 할 수 있다』는 중국속담대로 심천에서는 「부대발복」을 좇는 거대한 흐름과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심천에 진출한 외국업체 수는 9천2백70개, 총 투자액은 33억달러.
홍콩·대만이 앞장선 외국투자에 대해 일각에서 『자본주의에 잠식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자 등소평은『두려워 할 것 없다』고 한마디로 못박았다.
해외로부터의 투자액은 중국 내지로부터의 투자에 비해 아직은 25%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중국 각성·기관·대기업단위들의 심천 진출이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심천주민 2백만명 가운데 8할은 중국 각 지역에서 몰려든 외지인들이다. 수입이 타지역에 비해 2, 3배 높은데다 교통·통신이 발달하고, 무엇보다 의식이 앞선 「남들이 우러러보는 곳」인 심천시의 외지인들은 각 지역 및 전문분야에서 집결한 엘리트들일 수밖에 없다.
심천에서 주로 통용되는 화폐는 인민폐가 아닌 홍콩달러. 신문·방송도 중국 것보다 홍콩에서 바로 연결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심천은 「사회주의 홍콩」으로 불린다.
사회주의 경제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접목시키는 작업, 오는 97년 홍콩반환을 위한 수위조절역할을 하는 심천은 이런 면에서 중국개혁· 개방의 거대한 「실험실」이기도 하다.
시중심에 위치한 53층짜리 심천무역센터 꼭대기엔 회전전망대가 꾸며져 있다. 눈 아래로 홍콩교외의 아파트군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인다.
지난 1월20일 바로 이 자리에서 등소평은 중국의 개방· 개혁정책이 심천의 경험을 통해 「올바른 것」으로 증명됐다면서 개혁속도를 더욱 높이라고 호령했다. 지난 79년 4월 등소평은 『광동성에 특구를 하나 만들면 어떻겠느냐. 중앙에는 돈이 없다. 스스로 해결해 보라. 한줄기 혈노를 열어줄 것을 당부한다』면서 마치 낙성을 앞둔 장군이 부하에게 돌파구를 열 것을 당부하는 것처럼 당시 광동성 지도자였던 시중쉰(습중훈)과 양상쿤(양상곤·현 국가주석)에게 지시했다.
등소평의 지시에 따라 80년 8월26일 출범한 것이 심천 경제특구였다.
『80년대 초반 심천 개발착수로 국고가 축나는 바람에 나라가 파산할 지경이었다.』
중국정계의 한 원로는 심천개발을 핑계로 국가재산을 착복하는 이른바 관도(관리의 부정부패) 때문에 「심천 실험」은 한때 실패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주의는 나라 오도">
그러나 등소평은 단호했다. 84년1월 심천을 방문한 그는 『특구란 창구다. 기술을 도입하고 관리방법을 배우는 창구이자 지식과 대외정책을 위한 창구다. 단순한 경제분야 뿐 아니라 인재를 기르는 적지이며 대외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곳』이라며 특구정책을 밀어붙였다.
심천경제가 내향체제에서 외향주도로 바뀐 것은 지난85년. 『세계무역시장에서 경공업제품에 관한 한 이만한 품질의 제품을 이만큼 싼값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마술은 중국인 아니고는 부릴 수 없다』는 자신감에 찬 방향전환이었다.
광주-심천·주해-심천으로 연결되는 도로에서 심천 세관으로 향하는 컨테이너 대열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중국인이 흔히 쓰는 「머리도 꼬리도 없는 거대한 용」 「움직이는 만리장성」이 과장이 아니다.
심천과 그 배후 공업지대에서 생산되는 물량으로 심천∼주해∼광주 고속도로는 이미 심각한 체증현상을 빚고 있다.
심천은 비단 홍콩뿐만 아니라 상해· 천진· 대련등 20여개의 국내 도시들과 연결돼 있으며, 미국· 일본· 호주·싱가포르·노르웨이등 세계각지로 「중국제품」을 실어내고 있다.
전국최고의 소득수준, 기술 및 자본도입창구, 그리고 세계진출의 전진기지…. 등소평이 당부 「혈로」가 뚫린 것이다.
이제 실험은 끝나고 실천만 남아있다. 심천시내 곳곳에 나붙은 시당에서 내건 공담오국 실간흥방 (주의나 이론 따위는 나라를 오도하며 오직 실질적 노력만이 나라를 이롭게 한다) 슬로건은 이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혁· 개방정책 실현과정에서 독버섯처럼 나타나는 관료주의적 병폐와 부정부패는 「실험」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출근해서는 주식이야기, 회의중에는 삐삐(비퍼·무선호출기) 응답하기, 일할 때는 자기 몫 챙기기, 밤이 되면 카바레』. 심천시민들은 민원의 대상이 되고있는 관료들의 업무자세를 이처럼 풍자한다.
개혁·개방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식 풍토는 청산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차원의 구조적 부패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공안원(경찰관)월급은 2, 3백위안(원)에 불과하다. 어떻게 해서 주택을 호화롭게 단장하고 매일 밤 가라오케 바에 갈 수 있는가.』
중국인의 소득은 음성수입을 합친다면 이미 1인당 국민소득(GNP)이 미화 2천달러는 넘을 것이라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홍콩인 현지처로>
『지난 4년동안 집세가 3∼4배 올랐다. 월급도 제자리걸음이다. 주택· 취학·의료등도 너무 비싸다.』
심천의 개혁성공에도 불구하고 일반시민의 생활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
심천의 성공을 지탱한 원동력은 바로 30여만명에 이르는 여공들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심천이 생산도시에서 소비도시로 「발전」함에 따라 여공의 탈선이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전국 각지에서 「돈 많은 외국인」을 노리고 모여드는 젊은 여성들까지 가세, 「삼포소저」라는 유행어를 낳고 있다.
의·식·주 편의를 제공하는 남자와 동거하는 젊은 여성이라는 뜻이다.
홍콩 남성들중에는 홍콩의 집을 처분, 홍콩시세의 5분의1에 지나지 않는 심천에 주택을 구입해 젊은 본토여성을 현지처로 들여 앉히는 것이 유행처럼 돼있다.
광주· 심천에서 일제단속을 벌이면 수천내지 1만여명의 「부업여성」들이 체포된다.
단속때마다 그만한 수가 걸려드는 것으로 보아 공안원들의 수입이 만만치 않을 것임은 짐작이 가지 않느냐는 것이 현지인들의 지적이다.
심천은 기회의 땅이면서 동시에 약육강식의 땅이기도 하다.
글 전택원특파원
사진 신동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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