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선수 훈련비 '푼돈' … 관료 출장비 '풍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한국 태권도 대표팀 감독으로 약 6개월 동안 12명의 남녀 선수와 함께했던 때의 시린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태권도 대표팀 선수들과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다가 선수촌 밖 국내 훈련과 해외 전지훈련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국내 훈련 경비내역서를 볼 때 한심하고 심한 배신감이 들었다. 체육회를 통해 지급된 대표팀의 일인당 하루 경비는 4만2000원(숙박비 1만8000원+식대비 2만4000원)이었다. 2인 1실을 쓴다 해도 숙박비는 3만6000원으로 터무니없었다. 국내에서 이 돈으로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어느 수준인 줄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국내훈련은 참을 만하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호주 대표팀과 훈련하기 위해 호주 멜버른으로 10일간 전지훈련을 갔다. 우리 대표팀에 지급된 일인당 하루 경비는 미화 70달러였다. 숙박비 절약을 위해 훈련 장소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떨어진 곳의 허름한 호텔(2인 1실 미화 80달러)을 구했다. 식대비는 일인당 하루 미화 30달러였다. 현지 사정에선 너무 형편없는 경비여서 지도자들이 한인 식당을 찾아다니며 통사정, 가격을 할인해 식사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나날이었다. 대한체육회에서 국가대표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해외 전지훈련을 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약 20년 전 책정된 예산을 지금도 적용하는 것은 참으로 비현실적이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대표팀의 해외훈련비는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다. 지난달 18~22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2007 세계태권도대회에 참관하면서 각국 지도자에게 해외훈련비를 물어봤다. 미국.이집트.이탈리아.호주.아랍에미리트.프랑스.영국 등은 일인당 하루 경비가 미화 200달러이고, 남아공화국.태국.베네수엘라 등은 120달러 정도였다. 우리는 A급지(미주 및 유럽)가 80달러, B급지(동남아)가 70달러다.

예산절약 차원에서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국가대표팀을 관리하는 대한체육회와 이를 감독하는 문화관광부의 임직원이 해외출장 갈 때의 소요 경비는 일인당 하루 미화 210달러(호텔 120달러 + 식대비 90달러) 정도로 알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지난해 11월 중순 도하 대회 출정 전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대표선수 격려를 위해 선수촌을 방문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 다만 그 뒤 국회에서 이 문제를 갖고 해당 부처에 질문이 있었던 터라 문화관광부와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은 이 문제가 오래된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시정하지 않는지, 하고 있다면 무엇이 장벽인지 속시원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국가대표팀의 해외 전지훈련이 전력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라도 현실에 맞는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 그래서 선수와 지도자가 자부심을 갖고 훈련에 전념해 더 좋은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농구.야구.배구 등과는 달리 예산 책정에서도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느끼는 비애감을 관계자들이 한번쯤은 곱씹어 봤으면 한다. 그런 것이 우리 스포츠를 발전시키는 길이다.

전익기 경희대 교수·체육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