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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지구촌 사람] 6.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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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언제 국민이 환호하는지 안다는 얘기다. 그것은 국제무대에서 프랑스의 위신을 세우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3년은 반세기 가까운 그의 정치 역정 중 가장 성공적인 시기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라크에 전운이 싹틀 무렵부터 초지일관 "전쟁불가"를 외쳐댔다. '불도저'란 별명다웠다. 써먹진 못했지만 유엔 상임이사국의 보도(寶刀)인 거부권 행사 카드까지 뽑아들었다. 반전 진영의 우두머리로 부상했다. 전세계 평화주의자들에게 그는 미국이라는 악마에 맞서는 평화의 사도처럼 보였다.

반전의 기수를 자처한 효과는 프랑스에서 절대적이었다. 국민 지지도가 사상 최고인 85%까지 치솟았다. 나치 독일에서 프랑스를 해방시킨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기록을 깼다. 그야말로 그는 또 다른 별명대로 '봉갸르(bon gars.괜찮은 청년)'였다.

미국에서는 그가 악마였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걸음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을 위시한 미국 내 애국주의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시라크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의 분노는 반프랑스 감정으로 번졌다. 미국인이 즐겨 먹는 '프렌치 프라이'는 '프리덤 프라이'로 이름이 바뀌었고 성급한 사람들 사이에서 포도주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이 예상보다 싱겁게 끝나면서 시라크의 입지가 크게 좁아지는 듯했다. 미국 정부의 매파 인사들은 프랑스에 대한 응징을 공공연히 거론했다. 마치 프랑스가 패전국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시라크도 흔들렸다.

미국과의 화해를 구걸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의 그는 반대파들이 붙여준 '풍향계(시류에 영합한다는 뜻)' 또는 '카멜레온 보나파르트(변덕스러운 나폴레옹이라는 뜻)'라는 별명 그대로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종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상황은 부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미국은 분통이 터질지 몰라도 프랑스가 전적으로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국이 주장하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후세인이 체포됐지만 인적.물적 피해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시라크 대통령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그는 당장 이라크에 주권을 넘겨주라고 요구하면서 세계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이라크에 과도정부가 세워지고 미.영 점령군 대신 유엔 평화유지군이 들어가면 이라크인이 모욕을 덜 느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무력 저항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시라크 대통령은 사실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파리정치학교 시절에는 미국을 흠모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하버드 서머스쿨을 다니기도 했다. 당시 미국 여대생들과의 연애담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미국이 독주하는 세계 속에서 프랑스가 소외되는 것을 참지 못할 뿐이다. 그것이 시라크가 계승하고 있는 드골주의다. 숱한 비리 의혹 속에서도 50% 아래로 결코 떨어지지 않는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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