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사상 최강세/달러당 1백10대 진입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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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 기축통화 향해 줄달음질/「유럽위기」로 안정통화 급상승/경쟁력 향상에 노력 원화 대응력 시급
전후 처음,사상 최고로 힘이 세어진 엔화―.
바로 이웃 나라의 외환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달러당 1백10엔대에 들어선 엔화의 초강세로 이제 일본돈은 세계의 기축 통화를 향해 또 한걸음 다가섰다.
이번 엔화 초강세의 직접적인 배경은 유럽 각국의 돈을 믿을 수 없게 된 대신 일본 돈을 믿으려는 국제금융시장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그 나라의 돈을 믿어준다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가 그 만큼 힘이 세다는 것이고,이는 또 다시 세계 경제에 미치는 그 나라의 영향력이 그만큼 더 강해진다는 뜻이다.
바로 이웃한 우리의 입장에서는,당장의 엔고가 몰고 올 우리의 수출 증대 효과에 대해 산업별로 주판알을 튀기는 단기적 계산만 하거나,모처럼의 엔고가 얼마나 지속될까 하는 희망섞인 전망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난 85년부터 시작됐던 3저(엔고에서 비롯된 저달러,저금리,저유가)가 결국 우리 경제에는 거품성장과 구조조정 지연을,일본 경제에는 더 높은 단계로의 구조조정 촉진을 가져왔다는 쓰라린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힘센 엔화에 우리라고 끌려다니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당장 올 상반기만 해도 수출대금의 엔화결제비율은 1년전에 비해 더 낮아진 대신(지난해 7.6%,올해 6.3%),수입대금의 엔화 결제비율은 더 높아졌다(지난해 13.6%,올해 13.9%).
이는 일본의 수입·수출선들이 엔화 강세에 따른 환율 위험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그만큼 우리는 환율 변동의 위험을 더 떠안는다는 이야기다.
이번 엔고를 몰고 온 유럽의 통화 위기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 통화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유럽에서의 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강건한 경제력과 다른 나라의 취약한 경제력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영국이 금리를 수시로 조정하고 파운드화 방어를 위해 1백억 ECU(유럽통화단위)를 조달해가도,유럽에서 가장 인플레율이 안정되고 견실한 성장을 지속해온 독일의 마르크화에 대해 파운드화가 폭락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 바로 유럽 통화위기의 본질이며,그 결과 현재로서는 가장 안정적인 통화로서 일본의 엔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원화를 들고는 아직 국제금융시장에서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경제력이 취약한 우리로서는 이같은 유럽의 통화위기나 엔고에 대응할 수 있는 환율정책은 없다.
다만 우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유럽의 통화위기나 엔고가 얼마나 지속되던 간에 상관없이 구조조정과 경제력 향상에 계속 노력해 원화의 힘을 하나하나 보태가는 일이다.
엔고는 우리 경제에 당장의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지난 85년 엔고의 경험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엔화는 28일 동경시장에서 달러당 1백19.65로 장을 끝낸데 이어 뉴욕과 런던에서도 각각 1백19.65,1백19.50의 초강세로 장을 막았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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