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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의 TV 뒤집기] ‘온스타일’ 중독자의 이유 있는 변명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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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15면

일러스트 강일구

어떤 TV 채널을 보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어떤 채널만 보지 않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줄 수도 있다. 내게는 ‘MBC-Espn’이나 ‘온스타일’에 대해 “그런 걸 왜 봐”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솔직히, 나랑은 취향이 맞지 않겠다 싶다. 프리미어리그의 골 장면 하이라이트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걸 느껴보지 않은 사람과, ‘수퍼모델’ ‘아메리칸 아이돌’의 스릴 넘치는 경쟁에 가슴 졸여보지 않은 사람과 어찌 진지하게 통할 수 있겠는가.

‘MBC-Espn’이 프리미어리그라는 확실한 ‘장르’로 팬을 사로잡고 있다면, ‘온스타일’은 특정 장르보다는 ‘취향’으로 폐인을 낳고 있다. 수많은 케이블 채널들이 스포츠ㆍ드라마ㆍ여행ㆍ낚시ㆍ바둑 혹은 오락까지 이런저런 장르를 내세우지만 ‘온스타일’이 목표하는 건 어디까지나 ‘취향’과 ‘스타일’이다. 사실 이 채널은 미국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와 쇼들을 선별해서 모아놓은 것뿐이다. 그동안 여성 대상의 패션과 요리 채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 같은 ‘온스타일’ 중독자들이 그 채널에 고정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채널을 꿰뚫는 키워드는 ‘쉬크(Chic)’함과 ‘아메리칸 스타일 라이프’다. ‘무엇’을 보여줄 건가 하는 장르의 고민보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런 취향의 문제는 사람들을 단단히 옭아매고 그 속에 영입되어 동질감을 느끼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소비를 향한 욕망에 있어서 어떤 비난에도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당당해진 여성을 세상의 주체로 받든다. ‘쉬크’하기만 하다면 그들은 ‘미운오리 백조 되기’처럼 전신 성형을 할 수도 있고, ‘퀴어 아이’의 게이들을 친구로 둘 수도 있다. 다른 채널에서 몇 차례나 방영된 ‘섹스 앤 더 시티’를 계속 재탕하는 건 그것이 이 채널이 지향하는 모든 쉬크함을 가진 바이블이기 때문이다. 캐리의 브런치 식사, 코스모폴리탄 칵테일, 마놀라 블라닉, 지미추 하이힐은 ‘온스타일’ 중독자들의 생활 가이드라인이다. 그걸 가질 수 있는 상황이든 아니든, 그 이름과 눈썰미를 입과 눈으로 주워섬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판타지. 거기에 ‘소비문화의 중독자’란 비난의 칼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문제는 중독되는 게 취향과 스타일뿐만은 아니라는 거다. ‘수퍼모델’이나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젝트 런웨이’에서 필부(匹夫) 필부(匹婦)들이 톱스타가 되는 과정 속에서 독한 비난과 좌절과 눈물을 맛본 뒤 성공을 쟁취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 여성들의 역할모델로 자리 잡은 ‘오프라 윈프리 쇼’가 늘 주장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이 내게는 예수님 말씀보다도 더 와 닿는다. 취향의 문제로 빠져들었던 채널의 프로에서 정신적인 감화와 생활철학까지 철저히 아메리칸 스타일이 돼가는 거다. 그러니 매일같이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시고, 뉴욕스타일을 중계하는 TV를 보고, 그 말씀을 새기고,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미드(미국 드라마) 중독자가 되어버린 나는 이미 속으로는 미국 사람이 다 돼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 뭐 하나. 거울 앞에는 캐리의 두 배쯤 되는 몸무게의 내가 있고, 초라한 된장찌개 밥상과, 2만원짜리 짝퉁 핸드백과, 카드대금 납입일의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정말 뉴욕으로 떠야 내 인생이 쉬크해지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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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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