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철의 BT 이야기] '암젠’ 이야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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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27면

1922년 미국 브루클린 출생의 과학자 골드와서는 당시 과학계에서 가설로만 존재하던 환상의 물질을 찾기로 결심했다. ‘EPO’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이 단백질은 골수에서 적혈구를 생성하는데, 그 양이 워낙 적고 일시적으로만 나타나는 물질이어서 과학계 일각은 그 단백질의 존재조차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존재가 규명된다면 수백만 명의 악성 빈혈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 시카고의 작은 병원에 연구원으로 취직한 유진 골드와서는 근처의 도축장에서 양의 혈액을 채취하는 일을 시작했으나 끊임없이 실패만을 경험했다. 15년 뒤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EPO가 혈액보다는 요(尿)에 과량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이는 곧 골드와서의 연구가 무위로 돌아가는 것임을 의미했다.

낙담한 골드와서를 찾아온 행운의 여신은 일본의 과학자인 미야자키였다. 2.5t의 빈혈환자 오줌을 골드와서에게 줬는데 여기서 그는 8㎎의 정제된 EPO를 얻을 수 있었다. 손톱만큼의 분량에 불과했지만 이 단백질은 당시 과학계에서 누구도 갖지 못했던 재산이며, 동시에 바이오텍 기업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암젠’ 성공의 토대가 되었다.

벤처기업인 암젠은 EPO의 상용화에 착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변형치료제인 EPO가 성공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암젠이 창업 초기에 투자가들에게 제시한 사업계획서에는 기름을 만드는 미생물, 양계산업을 위한 조류 성장호르몬 등과 같은 연구계획들이 주류였다. EPO는 계획서 말미에 포함될 정도로 홀대받던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더욱이 골드와서는 이 물질에 대한 특허조차 출원하지 않은 상태였다. 암젠에 출자했던 거대 진단기업인 애보트조차 EPO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으며, 연구 중단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암젠의 과학자들은 끊임없는 연구로 EPO의 단백질 서열을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최초로 이 인체단백질을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분리해내 대량생산할 수 있게 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바이오 기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암젠이 EPO를 대량생산해 만들어낸 빈혈치료제 39에포젠39

암젠은 매년 10조원이 넘는 매출과 3조원이 넘는 이익을 내는 미국의 초우량 바이오텍 기업이다. 미국 증시의 S&P500지수에 500개 기업이 포함돼 있는데, 미국의 유력 경제지들은 이 가운데 가장 미래지향적인 기업 중의 하나로 암젠을 꼽는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60조원으로 전체 미국 제약회사 중 6위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80조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암젠의 기업가치 규모가 쉽게 짐작될 것이다.
암젠의 모태가 되었던 과학자 골드와서는 47년간 재직했던 시카고 대학에서 2002년 은퇴했다. 가장 성공적인 바이오텍 기업의 모태가 된 연구업적에도 그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EPO에 대해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천만 달러가 되었을 로열티 수입을 챙기지 못했다. 그가 최초로 발견한 EPO의 덕택으로 생명을 구한 수백만 명의 환자들이나, 암젠을 매일 주시하는 월스트리트의 사람 중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를 인터뷰했던 시카고 트리뷴지의 저널리스트 메릴 구즈너는 낡은 장비가 어지럽게 널려 있던 골드와서의 연구실에 대해 “개발도상국에나 중고 장비로 팔려갈 만한 것들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과학과 산업은 EPO의 사례처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지만, 과학자와 기업은 이렇게 다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이오텍 기업의 효시인 암젠의 성공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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